에우리피데스는 기원전 5세기에 활동한 아테네의 극작가이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아 함께 3대 비극작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BC 5세기는 소크라스테스가 활동한 시기이고, 동아시아에서는 공자가 유학의 기초를 놓던 시절이다. 다시 말해서 동서양에서 인문주의가 싹트던 시절인데, 이것은 제물을 신에게 바치던 고대 종교가 쇠퇴하고 합리적 인간의 덕성을 통해 세상의 평화를 만들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BC 5세기 아테네에는 유명한 페리클레스에 의해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화려한 고대 건축물인 파르테논 신전도 페리클레스의 주도하에 건립되었다. 그런데,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신전을 짓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붓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신전 건립을 반대한 아테네 시민의 반응은 인류 문명이 신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인간중심의 이성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 비극은 바로 그 시기에 탄생했다. 그리스 비극은 인류가 종교를 벗어나 윤리와 철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100년 정도 유행했다. 비극 작품은 고대의 자연종교가 더 이상 효력이 없어지면서 생기는 인간의 불행을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회통합의 기능을 담당했던 종교를 대체해서 분열과 갈등을 막을 새로운 장치가 자리잡기 이전의 과도기적 불안이 비극의 형태로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신을 더 이상 섬기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인간의 자신감에 대한 불안이었다. 교만이란 용어는 그리스 비극에서 나온 말인데 신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하는 용어였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중에 『박카스의 여신도들』이란 작품이 있다. 박카스는 디오니시우스라고도 불리는 신인데, 올림포스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아들이다. 당시 그리스의 도시국가 테베의 왕 펜테우스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디오니시우스가 인간으로 변장하여 펜테우스에게 다가가 타이른다. “나 같으면 인간인 주제에 신을 향해 화내고 무식한 항거를 해서 벌 받기보다는 신께 귀의하여 희생의 제물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끝내 왕은 말을 듣지 않는다. 결국 디오니시우스는 자신을 숭배하는 여신도들을 미쳐 날뛰게 만들고, 여신도들은 광기 속에서 짐승과 아이들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이는 잔인한 살육을 벌인다. 그리고 결국 테베의 왕 펜테우스도 그들의 손에 의해 피를 흘리며 죽는다. 펜테우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던 그의 할아버지 카드모스가 손자의 주검을 안고 비통해 하며 최후의 말을 남긴다. “신을 업신여기는 자들은 이 펜테우스의 최후를 잘 보고 신을 숭배할 것을 배워야 한다.”

이미 대세는 인간 이성의 능력을 신뢰하는 인간주의적 낙관론으로 기울고 있었다. 비극작가들도 점차 신에 대한 신앙보다 합리적 정의와 인간애에 기초한 세상을 지지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닥 불안함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이성 능력에 자신감을 갖게 된 인간이 겸손을 잃고 서로를 자극해서 분열과 갈등이 증폭될 것에 대한 우려와 염려였다.

증오와 적대감에서 비롯된 복수의 악순환으로 인한 종의 멸망을 막아야 한다는 점은 선사시대부터 인류라는 종의 기본적 관심사이자 최대 과제였다. 종 차원의 관심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탄생한 자연종교는 희생제물의 피를 통해 공동체 내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막는 역할을 했다. 비극작가들은 그런 종교의 기능을 알지는 못했지만 종교가 사라질 때에 닥칠 비극적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일었던 것 같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 디오니스소가 팬테우스 왕에게 “폭력으로 폭력을 불러 일으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신에 대한 두려움을 상실한 인간이 폭력의 악순환에 빠져 인간사회를 멸망으로 이끌지 모른다는 작가의 직관적 불안함의 표출인 것이다.

희생양을 만들어 사회의 붕괴를 막는 자연종교는 어차피 극복되어야 한다. 종교를 비판하며 등장한 인문주의는 희생양의 피 대신에 마음의 수양을 통해 평화를 만들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인문주의는 인간이 희생양 만들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몰랐다. 인문주의자들은 사람에게는 평화를 만들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을 보고 한탄하지만, 세상을 그렇게 만드는 데에 자기 자신도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문주의자들은 모른다.

무고한 희생양의 피를 봐야 평화를 찾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비판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주제이다. 세상의 죄를 알리고 동시에 죄의 힘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 자신이 세상의 희생양이 된다. 내가 희생되었으니 너희끼리는 희생양을 만들지 말라. 성서의 메시지가 그렇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자연종교가 아닌 계시 종교라고 불린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모릅니다.” (누가복음)

19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는 서구 유럽이 세속화되고 지나치게 합리주의로 치닫는 것을 경계했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상류사회의 사람들은 과학을 섬기고 자기의 머리만으로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려고 하며, 옛날처럼 그리스도의 힘을 빌려 하지 않는다. 여러분, 민중의 신앙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이건 꿈이 아니다. 나는 일생 동안 우리의 위대한 민중의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장엄하고도 참된 존엄성에 대해 감탄해 왔다. 나는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아 왔기 때문에 증언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알기 때문에 아직도 열심히 하느님을 인정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우리 민중들의 가난에 찌든 모습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비굴하지 않으며 2세기 동안이나 농노 신세를 겪어 왔으면서도 태도와 거동이 자유롭고, 건방진 데라곤 손톱만큼도 없다. 그리고 복수심이나 시기심도 찾아볼 수 없다. 하님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우리를 구해 주었듯이 러시아를 구해 줄 것이다. 하님의 구원은 민중으로부터 올 것이며, 그들의 신앙과 순종으로부터 올 것이다.”

이론 이성에 기초한 과학적 사고와 실천 이성에 기초한 도덕주의적 윤리관은 종교가 미신이 되는 것을 막는데 기여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인문주의를 품고 가야한다. BC 5세기의 에우리페데스의 불안은 인문주의를 모르는 자연종교를 벗어나기 위해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의 불안, 곧 번영에 대한 자신감에 찬 인간의 교만이 불러울 재앙에 대한 염려는 여전히 타당한 것 같다. BC 5세기 비극 작가들의 위대한 불안은 19세기의 예언자 도스토예프스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을 관통하는 주제는 종교적 죄의식이 사라진 후 무절제한 자기 실현의 욕구와 무한 경쟁이 몰고올 위기상황에 대한 염려이다. 그 위기상황은 내면적으로 자기파괴적인 우울증의 확대 그리고 외부로는 인류사회를 파괴할 분쟁과 전쟁의 위험을 가리킨다. 에우리피데스가 지적한 “폭력으로 폭력을 불러 일으키는 인간”의 본성은 2000년 후에도 변하지 않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고대의 에우리피데스를 이어 근대 문명을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입구에 있는 디오니시우스 극장. 2007년 우주와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