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초에 송강 정철의 후손인 정호라는 분이 쓴 시가 있다.
칠월칠석 날이라, 가을 기운 느끼기에는 아직 이른데 (七月七夕秋氣早)
위에서 들리는 오동 잎 소리에 지레 놀라네 (梧桐葉上最先驚)
돌아가고 싶으나 돌아가지 못하는 강남객이여 (欲歸未歸江南客)
여관에서 잠못이루며 비오는 소리 듣네 (旅館無眠聽雨聲)
정호는 1710년, 나이 63세에 함경도 갑산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유배지로 향하는 마음이 오죽했으랴. 유배가는 도중에 어느 여관에 머물며 그 심경을 글로 남긴 것 같다. 칠월칠석이면 늦여름이라고 할 수 있다. 자려고 누웠는데, 우수수 오동잎 소리가 들린다. 순간 시인은 깜짝 놀란다. 문득 그 소리가 낙엽소리로 들린 모양이다.
“오동잎 하나 떨어지면, 가을이 왔음을 천하가 다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는 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마당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빨리 자라 목재로 쓰기 좋다는 실용적 이유가 있었지만 미학적 이유도 있었다. 빨리 자라는 만큼 무늬도 화려하지 않아, 오동나무 가구는 소박미를 좋아하던 조선 선비들의 미학적 취향과도 맞았다.
마당에 심어 놓은 오동나무는 시의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특히 가을에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오동잎은 수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오동 잎은 워낙 커서 떨어지는 모습이 묵직하고 땅에 닿는 순간 소리도 난다. 툭 툭 소리내며 떨어지는 누런 오동잎은 여름을 마감하는 계절의 변화를 분명하게 전한다.
기다리던 가을이 와서 반가울 수도 있지만, 오동잎이 땅에 낙하하며 내는 소리는 타오르던 젊은 날의 열정과는 다른 삶의 현실로 안내한다. 그것은 인간을 낮아지게 하는 우주의 울림이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흘러가는 세월을 받아들여야 하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소리였던 것 같다. 아쉽기는 하지만, 인간이 자기 본분으로 돌아가는 엄숙한 순간의 소리일 수도 있었다.
지금부터 300년 전, 유배길 도중에 여관에 누웠던 정호는 오동잎 소리를 듣고 깜빡 놀란다. 오동잎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가을이 왔다는 뜻이다. 벌써 가을인가? 세월이 이리 빨리 지나면 유배지에서 홀로 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남쪽에 있는 집에는 영영 돌아갈 수 없을까? 어디로 가는가? 마음은 남쪽 집에 가 있는데, 몸은 북쪽 함경도 벽지로 향하고 있다.
자려고 누워 가만히 들어보니 비가 온다. 그러고 보면 낙엽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빗방울이 넓은 오동잎 위로 우두둑 떨어지는 소리였던 것 같다. 지레 놀랐구나. 다시 자려고 누웠지만 잠은 안 오고, 쓸쓸한 마음으로 빗소리를 듣는다.
유배지에서 정호는 열심히 경전을 읽었다. 그는 홀로 있었던 그 시간을 하늘의 도와 더 가까이 지낼 기회로 삼았다. 중용에 이르기를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맹자는 유교적 자유인의 모습을 이렇게 말했다. “뜻을 얻으면 그들과 함께 나아가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도를 행한다. 부귀도 흐리지 못하고, 가난도 흔들지 못하고, 무력도 굴복시키지 못하니, 이러한 도를 일러 대장부라 한다.” 2000년 동안 동아시아인들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구절이다. 맹자가 말한 대장부란 유교적 자유인의 모습을 가리킨다.
기왕에 유배된 몸. 갇힌 곳에서 그는 하늘과 가까이 지냈다. 시간이 흘러 가는 걸 막을 수 없지만, 시간 너머의 영원한 도와 친하게 지내며 그는 더욱 자유인이 되어갔던 것이다. 유배 생활을 잘 견딘 정호는 이후 20 여년을 더 살며 영의정에까지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 흰 바위에 흐르는 맑은 물과 같다. 시인의 마음이.(2023)
저는 오동잎하면 최 헌의 가요가 먼저 떠오르는데 역시 목사님께서는 정 호의 시를
말씀하시네요.
가을에 들어서면서 마음으로 읽는 글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한 달에 한번 정도 올리시는 글은 마치 월간지에서 기다리며 챙겨읽는 기분이곤 합니다. ‘뿌리깊은 나무’ 같은.
일교차가 큽니다. 건강조심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