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절에 신학 공부를 위해 머물렀던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는 크리스마스의 도시로 유명하다.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장터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되었고 규모도 가장 크다. 오늘날에는 도시 곳곳에 300 여개의 가게들이 들어서고, 관광객도 매년 200만 명이 모여 든다고 한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스트라스부르를 ‘크리스마스의 수도’(Capitale de Christmas)라고 부르며, 시민들이 모여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밝히는 점등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11월부터 거리와 상점들은 물론이고 개인 주택까지 형형색색의 전구들과 각종 장식품으로 아름답게 치장되면서 도시 전체가 신비한 동화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리고 대성당 앞과 시내의 주요 광장에는 각종 장신구와 공예품 그리고 먹을거리를 파는 조그만 이동식 가게들이 늘어선다. 이른바 크리스마스 장터인데, 프랑스어로는 Marché de Noël 이라고 한다. 80년 대 유학생 시절에 뱅쇼(vin chaud)를 사서 들고 마시며 휘황찬란한 밤거리를 다녔다. 뱅쇼는 와인에 계피와 레몬을 넣고 끓인 것인데, 추운 겨울에 어울리는 건강음료인 셈이다.

축제 분위기의 크리스마스 장터는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종교개혁 이전인 중세에도 12월 6일 경에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앞에 조그만 장터가 열려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누어 주었는데, 니콜라우스 성인을 기념하는 것이어서 ‘성 니콜라우스 장터’(Marché de Saint Nicolas)라고 불리었다. 니콜라우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성인이다. 그러던 것이 16세기의 종교개혁에 이르러 크리스마스 장터의 규모가 커지고, 이름도 ‘아기 예수의 장터’(Marché de l’Enfant- Jésus)로 바뀌었다. 성인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로 바뀐 것이다. 종교개혁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스트라스부르가 가톨릭으로부터 개신교로 바뀌면서 생긴 변화이다.

Marché de Noël; fête; ouverture; Le village de l’Avent; chorale; coeur; enfant; Sapin de Noël; Illuminations de Noël; Arbre bleu; Square Louise-Weiss; Carré d’or;

종교개혁은 그리스도를 신앙의 중심에 놓으면서 사회 변혁을 일으킨 거대한 정신 혁명이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루터와 칼뱅의 새로운 이해를 가리켜 기독론 중심의 신학이라고 부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중에서 종교개혁자들은 특히 성자를 강조했다. 기독교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데, 중세의 가톨릭이 성부 중심의 신앙이었다면 개신교는 성자를 강조하며 초대교회의 신앙을 부활시키려고 했다.

성부는 예수께서 아버지라고 부른 하나님이니, 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다. 반면에 성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는 죽으리라’는 구약성서의 말씀은 세상 위에서 절대자로 통치하고 군림하는 하나님, 곧 성부를 가리킨다. 반면에 성자 곧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사람들을 만나 얼굴을 마주한 분이다. 성부가 사람 위에 수직적으로 군림하는 절대자라면 성자는 수평적으로 사람을 상대한 분이다.

사람을 상대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수난 받으신 분이 성자 하나님이다. 수난 받을 수 없는 하나님이 사람을 상대하면서 수난 받는다. 하나님의 수난이란 인간 세상의 고통이 하나님에게 전가된 것을 의미한다. 상대하면 상대방의 영향을 입는다. 사람을 마주하고 맞이한 그리스도는 세상의 고통에 영향을 입는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고통으로 삼는다. 하나님의 수난(Passion)은 우리 인간의 고통에 마음이 움직인 하나님의 수동성(passive)에서 생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세상을 품으신 하나님이고, 세상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삼으신 하나님이다.

삼위일체는 수난 받지 않는 절대자 하나님과 사람을 상대하여 수난 받으신 하나님이 같은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교리이다. 다시 말해서 삼위일체론은 절대(絶對)와 상대(相對)가 한분 하나님 안에서 통합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 점에서 기독교는 삼위일체가 없는 유대교나 이슬람과 다르다. 다른 유일신론은 절대 주권자로 군림하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나 기독교는 절대 주권자이면서도 세상의 고통을 품은 하나님을 말한다. 마르틴 루터는 말했다. “우리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고통이고, 그리스도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크리스마스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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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계절은 사람을 마주하고 맞이하기 위해 오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세상의 죄와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강림이다. 세상의 고통을 품으신 하나님 안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진리는 명령하기보다 먼저 위로한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에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사진 1. 스트라스부르 클레베 광장의 크리스마스 장터, 2007년 사진 2. 스트라스부르 거리. 사진 3.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크리스마스 음악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