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독일의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가 태어난지 3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가 태어나고 죽은 곳은 쾨니히스부르그. 2차 대전 후에 패전국 독일의 영토 분할 과정에서 지금은 러시아 소유가 되었고, 칼리닌그라드로 불리운다.

독일을 비롯한 서구는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칸트 탄생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칸트의 자유주의 사상과 다른 길을 걸어온 러시아에서도 칸트를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열린 모양이다. 그만큼 칸트가 미친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칸트는 근대 개인주의 철학과 자유주의 정치사상 및 법 사상의 기초를 제공하고, 그리하여 근대 민주주의 형성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인간의 사회 생활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새로운 안목을 제시하면서 칸트는 인간정신의 숭고함과 역사 발전에 대한 신념과 비전을 제시했다. 오늘날 칸트에 관한 공부는 현대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통과의례가 되었다.

칸트가 없었다면 인류가 누릴 수 없었을 법한 것이 무엇일까? 어떤 독일학자는 세 가지를 들었는데. 첫째, 인간 존엄성, 둘째 성숙한 시민의식, 셋째 국제연합 곧 UN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인간 존엄성(dignity)은 칸트가 주장한 인간 개념과 관련이 있다. 칸트는 <도덕형이상학 원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율적 존재로서 존엄하다.” 이것은 근대적 인권의 핵심 내용이 되었다.

인간 존엄성의 근거는 자율성에 있다. 자율이란 누가 시켜서 하지 않고 스스로 하는 것을 가리킨다.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 결정에 자기가 책임을 질 때에 인간은 존엄해 진다. 그러므로 자율성 개념에는 자유와 책임의 개념이 같이 들어 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존엄하고, 또한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지는 존재로서 존엄하다. 그래서 칸트의 자유에는 항상 도덕성 문제가 따른다.

칸트는 인간 이성이 선악을 분별하고 선을 행할 수 있는 도덕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실천이성의 능력이다. 염치없는 행위나 부당한 행위로 남에게 폐가 되거나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스스로 자기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곧 칸트가 생각한 이성 능력 곧 양심이다. 양심은 옳은 도리를 자신에게 명령하는 내면의 힘이고, 또한 그 명령대로 행하는 내면의 힘이다. 그것이 칸트가 말하는 자율(autonomy)의 의미이다.

그런데 칸트가 인간 이성의 숭고함을 말할 때에는 행동의 동기도 중요하다. 겉으로 도덕적 행위를 해도, 그 동기가 자기유익을 위한 것이면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은 자기유익의 동기가 아닌, 오직 그렇게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의무감 자체에서 행위를 할 수 있는 존재이다. 도덕법 자체에 대한 존중심에서 행하여야 한다. 물론 그 도덕법은 사람이 만든 게 아니고 이미 각자의 내면에 주어져 양심을 이루고 있다. 그것을 가리켜 칸트는 선험적 정언명령이라고 불렀다.

칸트는 자유와 자연을 구분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의 영역이다. 자연의 인과관계를 끊고, 이익과 무관하게 오직 양심의 명령에 순종할 때에, 인간은 하나의 자유로운 인격체가 된다. 그 점에서 칸트는 순수한 것을 추구한 관념론자이며, 그 점에서 영국의 실용주의적 자유주의와 다르다. 영국의 공리주의나 아담 스미스는 행동의 동기를 도덕성 여부를 가르는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남을 해하지 않는 한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그들은 보았다.

칸트 윤리는 엄숙하고 경건하다. 그 점에서 종교에 가깝고, 실제로 칸트가 루터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칸트의 형식주의 윤리는 하나에서 여럿이 나가게 하는 것인데, 그 점에서 도학인 유학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물론 칸트는 개인주의적인 측면에서 유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말이다.

어떻든 독일에서 자본주의 발달이 늦은 것은 순수함을 추구하는 칸트 철학의 종교성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며, 더 올라가면 루터의 영향이 크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동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악하다”고 한 루터의 명제는 칸트에게서 “도덕법에 대한 존경심에서 나오지 않는 행위는 악하다”는 명제로 이어졌다.

또한 칼뱅주의가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에 대해 우호적인 반면에 루터는 상업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고 농업을 정직한 노동으로 보았다. 칸트는 루터가 말한 신학적 자유 개념에 큰 영향을 받고 동시에 루터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았다. 반면에 영국의 아담 스미스는 칼뱅의 장로교가 왕성하던 에딘버러에서 활동했고, 존 로크 역시 칼뱅주의 후예인 청교도였다.

둘째, 근대적 시민 개념에도 칸트는 큰 영향을 미쳤다.

시민이란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을 가리킨다. 전통적인 국민이 통치의 대상이라면 근대적 시민은 정치의 주체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인간과 시민을 구분하는데, 인간은 내면의 덕성을 통해 스스로 자기통제를 하는 도덕적 주체라면, 시민은 국가법의 외부적 압력에 순종하는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인간이 되려면 참된 시민 또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중세까지 정치사상의 핵심을 이룬다. 그 점은 동아시아의 유학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칸트에게서 참된 시민은 참된 인간의 연장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칸트의 법사상은 윤리의 연장에서 전개된다.

칸트의 시민 개념은 자유롭고 자율적인 인간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시민사회는 법질서로 이루어지는데, 법(시민법 또는 실정법)은 남과 싸우지 않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각자 자기 삶을 살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의 자유가 남과 공존할 수 있도록 외부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규제할 법을 스스로 만드는 입법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법을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지킨다. 다시 말해서 입법과 준법이 모두 개인의 자율적 주체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물론 일상에서 지키는 여러가지 실정법은 개인들이 만든 것은 아니다. 법의 제정은 입법 기관인 국회의 권한이다. 그러나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선출에 의해서 존재한다. 말하자면 개인들의 자율적 입법권이 국회의원들에게 위임된 것이다. 그러므로 국회가 만드는 법을 국민 각자가 만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칸트는 사회계약론이 선험적 필연성을 지녔다고 보기 때문에, 그처럼 실정법을 개인들의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구속할 법을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법을 지킨다. 그러므로 준법정신이라는 것은 인간 존엄성의 산물이 되는 것이다. 법을 지키는 것을 강제적 억압으로 여기지 않고 자유로운 주체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칸트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 정치철학에 비해서 자유가 책임에 앞서고, 그만틈 시민 각자의 자발적 책임의식도 커졌다.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칸트는 정치를 윤리에서 떨어 뜨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 점은 현대 정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키아벨리와 다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윤리와 분리해서 생각했다. 그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윤리적 당위 보다는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집중했다. 그리하여 정치가 신학과 인문학의 영역에서 분리해서 사회과학의 영역이 되게 만들었고, 마키아벨리가 현대 정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칸트는 국가라는 정치공동체가 윤리공동체가 되기를 바랬다. 그 점에서도 칸트의 정치 철학은 신학의 영향을 받았는데, 오늘날의 시민이 소유와 소비의 권리 주체가 되는 것과 별개의 길을 제시한 셈이다. 존 롤즈 같은 사람이 <사회정의론>에서 공리주의를 보완할 대책으로 칸트의 정치사상을 제시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셋째, 칸트는 국제질서 형성에 양향을 주었다.

1차 세계 대전 후에 국제연맹이 만들어 질 때에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영향력을 행사했다. 칸트는 모든 국가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살 수 있으려면 평화가 필수적이고, 국가간의 조약에 의해 국제사회가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칸트는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국제사회의 친교와 평화가 한 사람의 존엄한 삶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전쟁이라는 폭력은 인류를 폭력의 악순환으로 몰아 넣기 때문에, 전쟁의 위협 속에서는 숭고한 도덕성이 발휘되지 못하고 인간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파괴하게 된다. 칸트가 국제질서의 평화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결국 한 인간의 삶이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쟁이 없는 평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평화는 불가능하지만, 칸트는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한 셈이다.

오늘날 현대 사회의 문제를 지적할 때에 칸트의 사상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는 어차피 칸트를 거쳐 칸트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진 1. 18세기 후반, 칸트의 집. 2. 칸트의 싸인 (위키페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