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는 어디에서 나오나? 인간이 찾는 의미의 한 가지 양태.

1942년 벨기에의 오래된 도시 앤트워프. 벨기에 전역이 나치의 점령 하에 있었다. 청년 빌은 친구와 함께 2인 1조로 활동하는 앤트워프의 신입 경찰이다. 그들의 의무는 독일군과 벨기에인을 이어주며 나치의 활동을 돕는 일.

바야흐로 유대인들의 강제수용이 다가오던 시절. 어느날 독일군 한명이 지나가던 빌 일행에게 유대인 집을 안내하도록 강요한다. 독일군이 그 집을 수색하던 중에 유대인 남자의 아내와 딸이 몰래 도망치다 발각된다. 독일군이 그들을 처형하려고 할 때에, 빌이 그를 죽인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독일군 시체를 하수구에 감춘다.

빌의 친구는 집안 전체가 백색여단과 관련이 있다. 백색여단은 무고하게 탄압받고 학살되고 강제 이송되는 유대인들을 구출해내는 앤트워프 시민들의 자발적인 비밀 단체이다. 그들은 나치의 정보를 미리 빼돌려, 유대인들을 미리 피신시키는 방식으로 유대인들을 돕는다.

백색여단은 빌과 그의 친구가 감추어둔 독일군 시체를 바다에 버려서 증거를 없애려고 했다. 그러나 빌과 그의 친구를 수상히 여긴 점령군 장교의 끈질긴 추적 끝에 백색여단의 책임자가 고문 끝에 죽고, 단원들도 모두 처형당한다.

영화 <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백색여단의 책임자는 단원들과 비밀아지트 모임에서 이렇게 말한다. “두렵다. 그러나 우리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누구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희생은 당연하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묻고 싶다. 우리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

무자비한 폭력의 물샐틈 없는 감시 속에서 죄없는 시민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하려고 활동한 사람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겠지만, 오로지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걸고 활동했던 사람들. 그들은 폭력 앞에 비참해지고 모욕 당하는 인간성을 구하려고 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준 인간의 존엄성을 사탄으로부터 지켜내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우당 이회영(1867-1932)은 독립운동가이다. 한국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언급할 때에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름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냈고, 임진왜란 때의 이항복이 그의 10대조 할아버지이다. 그의 가문은 명동 일대에 큰 땅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둘째 형 석영은 남양주 화도 일대를 중심으로 거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동생 시영은 대한제국에서 외부 대신 등 높은 벼슬을 하다 나라가 망하자 우당과 함께 을사오적을 처형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다. 나중에 이시영은 중국에서 살아 돌아와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이 되었다.

1910년 한일합병으로 나라가 망하자, 여섯 형제가 모두 모여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갈 것을 결의했다. 우당은 형제들과 함께 가문의 재산을 모두 팔아 만주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투쟁을 주도했다. 일본 정규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청산리 대첩과 봉오동 전투가 모두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의 업적이다.

우당은 자유와 평등의 세상을 꿈꾸었으며, 만주로 옮기면서 집안의 종들을 모두 해방시켰다. 만주에서 활동하면서 그는 신채호 이을규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아나키스트) 운동을 전개했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그는 무정부주의에서 찾았던 것이다. 1932년에 대련에 도착한 우당은 조선인 밀정으로부터 정보를 듣고 기다리던 일본군에 의해 잡혀 고문 끝에 옥사했다. 체포될 당시 이회영은 너무나 빈궁했으며, 그의 형이자 대 부호였던 이석영은 중국에서 굶어 죽었다.

우당이 그의 동지들과 함께 만든 시가 전해지고 있다. 이른바 절명시이다.

그저 피로 쓴 여섯글자 ‘대한독립만세’

우리는 가족을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

동지들의 눈 속에 남는다.

우린 비록 숨통이 끊어져도

서로의 가슴에 화인으로 남아

죽어도 죽지 않는다.

우리는 찬사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답을 원하지 않는다.

대한독립 마침내 찾거든

깃발처럼 나부끼는 만세소리

함성과 눈물과 바람으로 살아

죽어도 죽지 않는다

우리는 죽지 않는다.

벨기에의 백색여단, 그리고 만주의 이회영과 그의 동지들. 하나님, 이들은 영원한 것을 사모했던 당신의 자식들입니다. 이들을 기억해 주시고, 이들이 사랑했던 이 땅, 금수강산 대한민국에 은혜와 진리로 같이 하소서.

사진. 1. 달이 있는 한강변 시월 초 어느날의 밤 풍경 2. 우당 이회영 3. 바위와 단풍(202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