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간다. 기러기 소리 들리고 밤하늘도 점차 차가워진다. 겨울이 다가온다는 신호이다. 겨울이 오면 이어서 생명의 봄도 오겠지. 계절은 모습을 달리하며 다시 찾아오는 법이니까.
그러나 100년 전 이국땅에서 가을을 맞은 어떤 한국인은 머지않아 봄이 오리라는 기대를 갖지 못했다. 1921년 가을. 그는 중국 땅에서 기러기 소리를 들으며 시를 지었다.
홀로 자리에 누우니 적막한 밤 끝없이 이어지고
어디서 왔나 기러기 한 두 차례 울어대네.
너만큼 신의를 가진 사람 있을까?
하늘 높은 데서 마음을 다해 아우가 형을 따르는구나.
빈주에서 서풍 급하게 불어오고
뿔 나팔 소리 성 머리엔 북두칠성 걸쳐 있네.
내 나이 일흔 둘 올해도 또 저무는데
어찌 고개 돌려 봄 꾀꼬리 찾으리요.
單床無寐數疎更
飛鴈何來一再鳴
有信人間誰似汝
盡情天外弟隨兄
自蘋洲上西風急
畫角城頭北斗橫
七十二年年又暮
那堪回首問春鶯
‘기러기 소리를 듣다’(聞鴈)라는 제목의 시이다. 구한말의 지식인 김택영이 지은 것이다.
대한제국에서 벼슬을 하던 그는 국운이 쇠하던 1905년에 중국으로 망명했다. 이미 그 당시에는 항일 의병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한국인들이 일본의 수탈을 피해 만주를 비롯해 해외로 이동을 시작하던 때이다. 1910년의 한일합병 이후에는 지식인들의 망명이 본격화되고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가 세워지면서 본격적인 무장투쟁 운동이 일어났다. 말하자면 조선인 디아스포라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김택영은 무장투쟁과 다른 방식으로 저항과 사랑의 삶을 살았다. 그는 중국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책을 썼다. 조선의 역사에 대한 책을 저술하고, 박지원을 비롯한 조선 선비들의 문장을 알리는 문집을 발간했다. 말하자면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글로 보존하고 외국에 알리는 일을 통해서 조국을 지키려고 했다.
위의 시는 1921년에 지은 것이다. 망명한지도 십 수 년이 지났다. 제국주의 일본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중국까지 점령할 기세이니, 조국의 독립은 요원해 보인다.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있지만,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기세를 떨치는 이들의 세월이 영원해 보인다. 나이는 벌써 일흔 둘. 바람이 차가워지니 올해도 기울어 가고 있다.
노쇠한 김택영은 쓸쓸한 마음을 안고 자리에 눕는다. 그러나 잠은 안 오고 적막한 밤은 끝날 줄을 모른다. 그때에 어디선가 들리는 기러기 소리. 조국에서 듣던 기러기 소리는 가을의 풍류를 자아냈는데, 머나 먼 이국땅의 기러기 소리에 온갖 생각이 든다. 기러기 날 듯 세월이 흐르니 초조함이 더해간다. 조국의 광복을 끝내 보지 못할까?
그런데, 가만히 듣자니 기러기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듯하다. 끼륵 끼륵 주거니 받거니 하늘에서 들리는 마음의 교통. 딴 마음 먹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우직하게 질서지어 나는 기러기들. 수 천리 여행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그들의 비결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믿음. 오늘따라 그들의 신의가 대단해 보인다. 서로를 믿지 못해 의심하고 다투고 공멸의 길을 가는 인간사회와 비교된다. 더구나 밀정이 판을 치는 교포 사회는 어떤가? 자기 한 몸의 안일을 위해 일본 앞잡이가 되어 동지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조직을 와해시키고 조국의 독립을 어렵게 만드는 밀정들. 그들 때문에 항일 한국인들은 서로를 믿고 살기 어렵게 되었다.
기러기들이 저 높은 하늘을 나는 이유가 있구나. 믿음은 하늘에 속한 덕목이다.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세상, 서로 신뢰하며 의를 위해 힘을 모을 수 있는 세상. 상호신뢰가 두터워서 교통이 잘 되고 평화로운 세상. 그것은 하늘이 준 소명이고 시대적 사명이다. 독립을 회복한 조국은 그런 곳이 되어야지. 하늘에서 들려오는 기러기 소리. 기러기들은 오늘도 하늘이 이 땅에 주는 사명을 알려준다.
그러나 나이가 이미 일흔 둘. 그런 세상을 내가 볼 수 있을까? 사명을 감당할 힘이 내게 남아 있는가? 성문 닫는 시각을 알리는 나팔 소리 들려 바라보니, 하늘에는 벌써 북두칠성이 크게 걸쳐 있다. 서쪽에서 불어온 찬바람이 알려준다. 곧 만물이 얼어붙을 것이다. 올해는 마음이 더욱 심란해진다. 조금만 참으면 봄이 올까? 꾀꼬리 소리를 들을 희망이 멀어져 가는 것만 같다. 조국의 광복은 멀어져만 가는 것 같다.
김택영의 시는 100년 전에 망명한 조선 지식인의 시들어가는 희망을 전해준다. 쓸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비통하기도 하고. 그러나 한편으로 자신의 소명을 성심껏 감당한 한 노인의 담담한 심경이 읽혀지기도 한다. 사람이 어떻게 모든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서 하는 만큼 하는 거지. 남는 것이 쓸쓸함이라할지라도 숭고할 수 있다. 여전히 기러기 소리는 들리지 않는가.
요즘 세상이 어수선하고 나라도 위기에 처한 것 같아 마음이 뒤숭숭하다. 국제질서는 이른바 강대국들이 강 대 강으로 대치하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세계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는 빨리 위기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국내 정치 문제로 분쟁이 그치지 않으니 큰 일이다.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한국 경제가 매우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 만큼 상황이 안 좋은 것 같다. 지난 반세기동안 모든 분야에서 성장을 누리며 살았던 이 나라의 삶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줏대를 가지고 사심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서로 믿고 살 수 있도록 도덕성 회복의 기운이 일어나야 한다. 이 땅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많은데,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로 이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땅의 사람들이 또 다시 피 흘리고 수난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찬바람을 맞으며 100년 전 이국땅에서 김택영이 들었던 기러기 소리를 다시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