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사순절 기간에 교회는 예수께서 당하신 세 가지 시험에 대해 묵상했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금식하며 마귀에게 시험당한 일이다(마태복음 4장).

마귀(디아볼리아)란 그리스 말인데, 어원으로 보면 ‘분열시키는 자’ ‘관계를 끊게 만드는 자’라는 뜻이다. 땅과 하늘의 관계를 끊는 자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열시키는 자가 마귀이다. 그러므로 세 가지 유혹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게 만들어 결국 사람들을 분열시키려는 것이다.

마귀의 첫 번째 유혹은 “돌이 떡이 되게 해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유혹이다. 먹고사는 일은 중요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며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사회의 공동책임이다. 그런데, 인간에겐 먹고 사는 일이 단지 먹고 사는 일에 그치지 않고 남부럽지 않게 먹고 살아야 하는 일이 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도 남만큼 살지 못하면 가난해진다. 결국은 먹고 사는 문제가 먹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문제가 되었다.

현대의 소비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2차 대전 이후에 인류는 소비사회로 들어갔는데, 먹고 사는 일이 소비문화로 바뀌면서 남과의 비교는 더욱 강화되었다. 소비란 쓰고 버리는 건데, 그래서 남는 게 없다. 소비문화에서 남는 건 쓰레기이고, 만족감은 잠시이다. 소비욕구는 충족되기 어려우며, 그래서 더욱 더 많은 소비에 매달린다. 식사와 인간관계와 여가와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소비문화로 바뀌고 있다.

소비가 우상이 되고, 소비를 위한 돈이 신이 되었다. 그렇게 먹고 사는 일이 마귀의 시험이 되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다.”(4:4) 그리하여 예수는 참 사람이다.

둘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보라는 유혹이다. 이것은 종교적 유혹이다.

장소는 성전이다. 성전 꼭대기는 성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곳에서 뚸어내리는 것은 하늘로부터 땅으로 하강하는 것이다. 다치지 않고 그 일에 성공한다면 그는 하늘의 사람으로 높임을 받을 것이다. 그는 신의 권능을 가진 자로 여겨지고, 군중은 그를 신처럼 떠받칠 것이다.

종교적 권위를 가지고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은 마귀의 유혹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신을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은 눈에 보이는 권능과 기적을 원한다. 마귀는 에수에게 군중의 박수를 받고 신처럼 되라고 한다. 성서를 유혹의 도구로 사용한다. “하나님이 천사를 시켜 너를 받들리니 다치지 않으리라.”(시편 91)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셨느니라.”(4:7) “내가보여줄 기적은 요나의 기적 밖에 없다.(마태 16:40). 예수께서는 군중을 경계하셨고, 사람들 앞에서 신처럼 되는 걸 거절하셨다. 그리하여 그 분은 참 하나님이다.

셋째 유혹은 천하 모든 나라를 주겠다는 유혹이다. 이것은 정치적 유혹이다.

마귀는 예수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 세상의 ‘영광’(4:8)을 보여주었다. 세상을 발밑에 두는 권력을 가지면 스스로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남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을 섬기는 일이요, 결국 마귀를 섬기는 일이다. 인간의 권력의지는 세상의 지배자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서 결국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마귀이다.

그러나 예수는 사람에게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사람을 섬기러 오셨다. 그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가능해진다. 그래서 말씀하신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10). 예수의 권위는 사람을 섬기는 데서 나온다. 그래서 그 분은 세상을 지배하는 참된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