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봄에 안식년으로 베를린 자유대학에 가 있었다. 부활절 전 주일 곧 고난주일에 베를린 돔에 예배드리러 갔다. 그 날은 바흐의 마태 수난곡이 공연될 예정이었다.
베를린 돔은 박물관들이 몰려 있는 옛 동독지역에 속하는 곳에 있다. 베를린에서 외관이 가장 큰 교회이고 눈에 띠는 교회이다. 원래 지하에 독일의 전통적 왕실의 무덤이 있는 가톨릭 교회였으나, 루터의 종교개혁 때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루터 교회가 되었다. 안에 들어가면 루터와 멜란히톤 그리고 칼뱅과 츠빙글리까지 16세기에 활동했던 종교 개혁자들의 동상이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뿐만 아니라 개혁이 성공하도록 루터를 도왔던 당시의 군주들 동상도 있다.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교회에서 활동한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독실한 개신교인으로서 루터의 신학을 음악으로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마태 수난곡은 종교음악으로서 최고의 걸작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루터는 중세의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을 거부하고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을 세웠다. 루터가 강조한 하나님의 수난을 음악으로 잘 그려낸 작품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이다. 흔히 미술작품으로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을 꼽고, 음악으로는 마태 수난곡을 꼽는 것 같다.
마태 수난곡은 바흐 당시에 한번 연주되었다가 잊혀졌는데, 1920년 무렵에 멘델스존이 우연히 악보를 발견하고 베를린에서 연주했다고 한다. 그 이후 마태 수난곡은 서양 음악사 최고의 걸작품 중 하나로 인정되게 되었다. 그때 그 연주회 자리에는 베를린 대학에서 가르치던 헤겔도 앉아 있었다고 한다. 헤겔의 철학 역시 루터 신학에 바탕을 둔 것으로써, 헤겔 자신아 자신을 루터교 쪽이라고 밝혔다.
2018년 3월 베를린 돔. 나는 마태 수난곡을 방송을 통해서 여러 번 들었지만, 거의 두 시간 넘게 연주되기 때문에 모든 감흥을 다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교회에서 노래의 가사가 적힌 순서지를 나누어 주었고, 루터 교회에서 직접 연주되는 음악을 듣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날은 교회가 꽉 찼다. 독일인들이 평소에는 교회에 잘 안 가다가도 절기에는 교회에 모여 음악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자신들의 기독교 전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제단 쪽에 선 합창대와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고, 청중은 음악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기침 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교회는 오직 음악으로 채워졌다. 합창대의 음성은 하늘로 창이 나 있는 돔 높은 곳에 이르고, 오케스트라의 화음은 성화와 성상들을 어루만진 후 사람들의 마음으로 흡수되었다. 교회 바닥과 보이지 않는 구석에 이르기까지 음악으로 채워졌다.
중간의 휴식 시간에도 사람들은 질서정연했고, 화장실을 오가면서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시 시작된 연주와 합창. 그리고 마침내 47번 알토 아리아에 이르렀다. “나의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mein Gott) 인간이 내는 처절한 슬픔의 소리가 회중의 영혼을 적셨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가 흘리는 눈물을 보시고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앞에서 가슴 아프게 통곡하는 제 이 심장과 이 눈을 보소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가 흘리는 눈물을 보시고”
장엄한 슬픔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바이올린의 선율을 타고 울리는 울음소리, 언어화되어 절제된 통곡의 소리. 그것은 종교적 울음이고 종교적 통곡이다. 그래서 장엄한 슬픔이다. 예술이 종교로 승화되면 장엄한 아름다움이 된다.
루터는 자신이 구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했고,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것이 유명한 “오직 은총으로만”(sola gratia)라는 모토이다. 슬퍼하는 죄인을 어여삐 받으시는 주님, 인간의 고통을 품어 자기 고통으로 삼으신 십자가의 그리스도. 바흐는 루터의 생각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만들었다. 47번 알토 아리아는 슬픔과 통곡이지만, 그것은 우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품 안에 있는 슬픔이요, 그래서 인간을 구원하는 슬픔이다. 인간과 우주를 구원하는 통곡이다. 그래서 장엄한 슬픔이고, 장엄한 통곡이다.
아름다운 선율을 따라 세상을 채우는 슬픔의 장엄함. 예배는 그렇게 드리는 것이다. 인생의 고난에서 생긴 죄인의 슬픔과, 인간의 슬픔을 안고 우주의 주인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장엄함과, 그 장엄한 슬픔을 표현하는 기도의 언어와 노랫가락이 만드는 아름다움. 그 셋이 모여 예배가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장엄한 아름다움 안에서 예배하라.”(시편)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큰 소리 칠 떼에 그리스도는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했다. 그 날 저녁 베드로는 사람들의 추궁을 받자 세 번이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발을 뺐다.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리했다. 그런 후, 베드로는 문득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고, 자리를 빠져나와 밖에서 통곡했다.(마태 26장)
베드로는 우리 모습이다. 성서는 언제나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그날 교회에 모인 독일인들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연주가 끝났는데 지휘자가 움직이지 않았다. 보통은 박수로 끝나는 음악회가 박수도 없었고 끝나지도 않았다. 숨막히는 고요함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이 조용히 일어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교회를 빠져 나갔다. 거기까지가 음악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음악과 함께 슬픔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독일인들이 울고 있다고 느꼈다. 베를린 돔 앞에는 큰 광징이 있다. 그 광장은 히틀러가 군대를 사열하고 군중이 모여 열광하던 곳이다. 베를린 돔에 들어가려면 그 광장을 거치게 되어 있다. 그날 음악회 내내 숨막힐 것 같았던 그 침묵과 적막함. 교회를 가득 채웠던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아리아와 합창 소리. 나는 독일인들이 베드로처럼 통곡하고 있다고 느꼈다
. 위대한 칸트와 헤겔 같은 사상가를 내고, 베토벤과 슈베르트 같은 음악가를 낸 문화민족인 독일인들이 갑자기 늑대로 변해서 순식간에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인간의 증오와 광기와 어리석음은 인간의 문화와 교양과 학식을 순식간에 집어 삼킨다. 인류의 적은 인간 자신이다. 독일인들은 공포와 절망감 속에서 간절히 도움을 바라던 불쌍한 이들의 눈을 외면하고 조롱하면서 차근차근 죽여갔다. 히틀러가 앞장섰고 지식인들이 도왔고 종교인들이 동의했고 교회는 침묵했고 군중은 집단적 광기 속에서 열광했다.
아,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우리가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나.
독일인들에게 유대인 학살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들은 ‘우리는 누구인가?’‘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라는 물음을 물으면서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들은 지금도 철저하게 과거사를 반성하고 있는데, 그런 사실을 베를린에 머물렀던 몇 개월 동안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우연히 베를린 교외의 반제 호수가에 있던 아름다운 주택에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유럽의 유대인들을 모두 동쪽으로 옮길 것을 결정한 나치 수뇌부 회의가 있었던 곳이었다. 유대인 대학살의 출발점이 된 회의이다. 자원 봉사하는 노인 부부가 친절하게 나를 안내해 주었는데, 독일인들이 어떻게 잔인한 학살의 범죄를 저질렀는지 전시된 사진을 보며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분들이 정성을 다해 자신들의 과오를 설명해 주는 데에 감동했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 그것은 200년 후에 바흐의 후손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가슴을 치며 슬퍼하도록 안내해 주고 있었다. 그 슬픔은 대학살이라는 죄에서 생긴 것이지만, 그래도 그리스도 안에서 슬퍼한다면, 음악으로 바뀌어 아름다울 수 있다. 십자가 밑에서 슬퍼하는 자는 누구나 인류의 고통과 아픔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과오를 저지른 지나간 과거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슬퍼할 줄 아는 것에는 깊음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슬퍼하는 그 슬픔은 겸허함과 타인에 대한 관대함으로 나타날 것이다. 기독교 교부들이 중요시했던 ‘인간의 존엄성’은 그처럼 슬퍼할 줄 아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