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에 미국윤리학회(SCE)의 66회 연례학술대회에 갔었다. Global Scholar로 선정되어 학회에 초청된 것으로서, 은퇴하는 해에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미국에 두 번째 가는 셈이었는데, 첫 번째는 2007년에 뉴저지의 드루(Drew) 대학교에 교환교수로 갔었다. 다만 내가 재직 중이던 이화여대의 사정으로 급히 돌아와야 하는 일이 발생해서 수업도 열기 전에 바로 돌아왔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미국생활의 경험이 없었고, 미국기독교윤리학회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곳에 가서 얘기를 들어보니 미국의 정치사상가로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큰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학회의 창립에 크게 관여했다고 한다.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졌고, 나도 그의 저서들을 연구하고 강의했었다. 한편, 미국의 국력을 반영하듯이 미국기독교윤리학회의 멤버는 미국과 유럽을 포함해서 900 명이 넘는 전 세계 학자들로 구성되었다. 말만 미국학회이지 세계학회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자연과학 등의 다른 분야도 미국학회가 곧 세계학회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학회는 워싱턴 DC의 르네상스 호텔에서 열렸는데, 왕복 비행기표와 숙박비 그리고 약간의 용돈을 내게 제공했다. 3박 4일 동안 진행된 학술대회에서 우선 놀랬던 것은 참석한 사람들이 거의 백인이라는 점이다. 흑인학자는 거의 안 보였고, 아시아계통의 학자들은 아주 조금 눈에 띄었다. 회장을 비롯한 임원은 모두 백인이었다. 미국대학에서 가르치는 한국인 학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현실이 그렇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나는 세 번 발표했다. 두 번은 루터의 정치사상에 대한 것인데, 서로 다른 내용으로서 한번은 미국의 루터교 학자들과 활동가들의 모임에서 강연했다. 그들이 강연의 주제를 정해서 내게 요청했는데, 정치에 대한 교회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강연의 제목은 A Sketch of Luther’s Political Theology on the Question of Church and State with Reflections concerning the Current Responsibility of the Church in Society.

워싱턴 시내에 있는 조지타운 대학의 법학교수와 나, 그렇게 두 명이 강연했고 강연 후에 조를 나누어 토론한 후에 종합적으로 강연자에게 질문하는 방식이었다.

미국의회와 행정부 등에서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활동가들이 나의 발표문을 중심으로 열심히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결국은 기독교가 정치현장에서 무슨 논리로 어떻게 정책수립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그 신학적 근거를 얻기 위한 논의였다. 조상이 아메리카 인디언인 여성목사 한 사람이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내게 인사했다. 이날 발표한 글은 미국 루터교회의 공식 저널인 “Journal of Lutheran Ethics”에 실렸다.

또 한 번은 학회 둘째 날의 발표였는데, 발표와 질의응답이 끝난 후에 루터 전문가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내 책을 읽고 싶다고 했는데, 한국어로 쓴 책이라고 하니까 놀라는 얼굴로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미국인들은 자기들이 알고 싶은 문서는 당연히 영어로 출판되어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루터에 대해 정밀하게 연구한 책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그 나라 말로 출판되고 읽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니까, 이천년 동안 이어진 기독교 문화 속에서 태어나 자란 서양인들이 한국에서 논의되는 신학담론의 수준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미국인이 유학을 말하면, 기초는 잘 되어 있을까라는 의심이 내 머리 속에 스치는 것과 비슷하겠지.

이때 발표한 논문은 미국 기독교윤리학회의 공식 학회지인 “Journal of the Society of Christian Ethics”에 실렸다. 논문의 제목은 「Luther’s Reformation and His Social and Political Ideas for Korean Church and Society」 이다.

제목을 보면 루터의 정치사상이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내용인데, 무슨 사상이든 나와 우리사회에 주는 의미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은 기본일 뿐, 사실 그 논문은 루터의 사상이 한국 뿐 아니라 현대사회 전체에 주는 의미를 알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그의 신학을 분석해서 소개한 것이다. 실제로 그날 발표를 들은 사람들은 논문의 내용을 미국 사회에 적용해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논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고, 세 부분의 제목은 각각 ‘Two kingdoms and the limit of politics’(두 왕국설과 정치의 한계), ‘Emergence of individual self-determination’(스스로 결정하는 개인의 등장), ‘Ethics of love: human rights of criminals and the vocational understanding of works’(사랑의 윤리: 죄인의 인권과 직업 소명설)이다. 이 논문이 보스턴에 있는 한 대학의 교재로 강의 계획서에 들어 있다는 얘기를 미국에서 공부하는 제자로부터 들었다.

루터의 사상에 대해 강연하고 논문을 발표한 후에, 셋째 날에는 기술문명의 문제에 대해 패널로 참여해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An East-West Conversation on Homo Technicus and Religious Humanism- From Alpha Go to Avatar 라는 주제였다.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나와 시카고 대학의 윌리엄 슈바이커 교수가 발표하고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미리 발표문을 준비해 나누어 주었다. 발표를 통해 현대 기술사회의 철학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자연 파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아시아 유학의 사유를 신학에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상의 우수함을 알리기 위해 퇴계 선생의 사상을 소개했는데, 청중들은 매우 집중해서 들었다.

새로운 얘기에 질문도 쏟아졌는데, 슈바이커 교수는 기독교 교리와 전통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고, 나는 원죄론과 삼위일체 등의 전통교리에 들어 있는 심오한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기후위기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아시아의 자연주의적 인문주의 사상을 배워야한다는 점을 설명했다. 아시아계의 젊은 학자들이 상당히 자부심을 느꼈다고 나중에 얘기를 들었다.

스물아홉 살 이후로 나는 기독교가 어떻게 한 인간과 인류를 구원할 종교인지를 알기 위해 모든 시간을 바쳤다. 신앙의 연장에서 이루어졌지만 학문은 신앙과 달리 냉철한 비판과 비교를 수반하는 작업이다. 기독교 고전들을 연구하고,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서양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칸트, 그리고 폴 리쾨르의 철학이 연결되었다. 아퀴나스와 아담 스미스는 좀 다른 갈래로 연결되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연구한 루터의 신학은 그동안의 연구에 깊이를 더해 주었다. 이전의 공부와 연결되어서, 고대와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문명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근대 역사발전론의 시조인 헤겔과 탈근대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준 하이데거의 사상이 루터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고, 17세기에 사회계약설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정치사상을 펼친 홉스와 로크의 학문 역시 루터와 칼뱅의 연장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문을 연 사상가가 마르틴 루터인 셈이다.

아프리카의 성자로 알려진 알버트 슈바이처는 의사이기 이전에 원래 중요한 신학자이다. 『문화와 윤리』라는 책의 서문에서 그는 칸트와 헤겔의 사상을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현대인은 모두 칸트와 헤겔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반영한 자유 민주주주의 정치제도와 교육제도 안에서 현대인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칸트와 헤겔은 전적으로 루터 신학을 기반으로 사유한 사상가들이다. 칸트의 인간론과 법철학에 루터의 영향이 짙게 깔려 있고, 헤겔은 스스로 자신이 루터파라고 말했다. 그렇게 보면 루터야말로 중세를 벗어나 근대 사회를 연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2017년에 독일에서 열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의 주제가 「자유의 문」이었다. 엠마누엘 레비나스가 말한 대로 근대사회의 핵심 개념이 자유라면, 루터는 근대의 문을 연 사람이다. 그의 저술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유를 전 인류에게 선물한 중요한 문서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성서의 한 부분으로 넣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문서이다. 이 문서에서 루터는 자유를 강조했지만 동시에 자유를 책임과 연결시켰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사랑으로 연결되어 결국 타인과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높인다고 보았다.

그런데, 루터의 자유로 문을 연 근대사회는 점차 타자에 대한 책임과 공동체의식이 약화되었다. 그리스도 앞에서의 자유라는 종교성이 사라지면서, 세속화된 사회에서 자유란 소유와 소비의 자유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타자와 사회 그리고 지구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이 약화되고 재물에 대한 탐심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온 세상을 휘젓고, 빈부차이는 강화되었으며, 약육강식의 현상이 만연하게 되었고 국제정치는 물론이고 전세계의 국내정치도 도덕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그래서 엠마누엘 레비나스 같은 학자는 자유에 기반한 근대 철학을 비판하고 타자에 대한 무한책임을 강조하면서 윤리를 제일철학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자 앞에 서기 전에 그리스도 앞에 서야한다. 그리스도 앞에서 나는 내 앞에 선다. 죄인을 의롭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내 앞에 선 나는 내게 수용되고, 나는 완전하지 않지만 온전하게 되며 자유롭게 된다. 그 자유는 세상으로부터의 자유이고, 세상의 평가에 매인 나로부터의 자유이고, 세상이 준 나의 정체성을 버린 나이며, 그래서 새롭게 난 나이다. 자유인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

낮아진 자기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찾게 된 자유는 타인을 수용하는 능력의 확장을 가져오는데, 자유가 불러오는 사랑이다.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에 대한 무한책임은 결국 자유에 기반을 둔 것이라야 한다. 다시 말해서 타자에 대한 무한책임의 지평은 그리스도 앞에서의 자유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책임을 위해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적 의미의 자유가 있어야 진정한 책임의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성서와 초기교회의 교부들 이래로 기독교의 오래된 가르침이다.

루터는 의무와 책임에 눌린 중세를 벗어나 자유를 우선시 했다. 그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근대라는 새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반드시 책임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설명한 점에서 루터는 현대사회를 치유할 길까지 제시한 셈이다. 미국학회에서 발표한 논문과 『아무도 내게 명령할 수 없다. 마르틴 루터의 정치사상과 근대』 라는 책에서 나는 그 점을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특별히 루터의 두 인격설(duplex persona)은 자유와 책임의 관점에서 연구할만한 가치가 많은 가르침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나와 사회 속에서의 나. 전자는 모든 인간관계를 벗어나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만드는 나이다. 모든 인연을 떠나 진공에서 탄생하는 자유인이다. 후자는 세상 속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통해 사회를 보존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사회인이다.

루터의 자유인은 키르케고어의 단독자 사상과 실존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은 루터의 자유인을 극단화시켜서 무성(無性, Nichtigkeit)에 기초한 무아(無我)를 추구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Sein, Being)는 곧 무아이다. 하이데거의 무아는 사회에서 형성된 나(I)가 아닌 비인격적 자기(it-self)이다. 그 점에서 하이데거는 불교에 가깝고, 하이데거에게 영감을 준 루터에게도 불교적 요소가 있는 셈이다. 모든 인연의 업을 끊은 진공 속의 나가 무아이니, 무아가 진아요, 하이데거의 본래적 자아란 불교의 무아와 같다.

그러나 루터 사상 속의 무아적 요소는 불교적 진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나(I)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났던 인연으로 다시 돌아가 그 인연을 새롭게 하는 주체로서의 나이다. 그리하여 타자와 유기체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쪽으로 나아간다. 세상나라 속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세상을 변혁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하나님 나라란 자유에서 비롯된 사랑의 나라이니, 자유는 싸우지 않고 서로를 섬기는 새 세상에 대한 에너지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이미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루터의 하나님 나라 개념은 헤겔의 정치사상과 법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루터의 신학을 세속화한 헤겔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몰랐다. 그 점에서 그의 국가철학은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에 이바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체제와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가 헤겔의 영향을 받았다. 한편 하이데거에게는 진공에서 형성되는 초개인주의적 자유만 중요했으며, 진공의 자유는 그리스도 안의 자유와 다르다. 그리하여 하이데거의 자유는 사회와 타자에 대한 책임을 부차적 문제로 만들고 하나님 나라 개념이 없어서 정치철학의 부재를 초래했다. 그가 양심의 거리낌 없이 히틀러에 협력한 것은 그의 철학에 기인한다. 그가 말한 양심은 도덕적인 게 아니라 본래적 자아 곧 무아가 되지 못하는 것을 탓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