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출판사에서 도로테 죌레 교수의 책 <고난>을 새로 내면서 추천사를 부탁하여 쓴 글이다.

성서의 하나님은 ‘땅에서부터 호소하는 아벨의 핏소리’를 듣는 분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간 사회의 폭력에 주목하고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종교이다. 아벨의 핏소리를 듣는 하나님의 아들이 마침내 십자가에 달렸다. 십자가 위의 외침은 하나님에게조차 버림받은 것 같은 희생자들의 소리를 대변한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십자가 밑에서 인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인간의 생존 방식 속에 들어와 있는 폭력에 대해 반성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무고하게 죽어가는 이들과 남은 자들의 슬픔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을 갖게 되었다.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보편적 가치의 언어로 세상에 알려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목사와 사제와 신학자들이다.

도로테 죌레 교수는 그 일을 충실히 수행한 하나님의 종이다. 그는 자기가 겪은 시대의 폭력과 고난의 현장 속에서 아벨의 핏소리를 대변할 언어를 찾은 운동가요 신학자이다. 그의 언어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어서, 틀에 맞추어진 기존 신학과 다르고 반교회적으로 보인다. 그는 교회가 거북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그가 신학을 붙들고 있는 것은 성서만큼 고난받는 자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문서가 없고, 성서만큼 회개와 평화의 길로 이끄는 문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희망의 관점에서 말한다. 좀 더 사랑하며 살자고 좀 더 정의로운 세상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교회를 존중한다. 교회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는가. 교회만큼 죄인들로 북적대는 곳이 없고, 때로는 교회만큼 회칠한 무덤 같은 곳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러나 그래도 죄인들이 받아들여져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교회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한 그리스도의 교회이니 말이다.

도로테 죌레 교수는 독일인이다.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광기와 살기의 현장을 경험한 사람이다. 우리가 어쩌다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독일인들이 히틀러 앞에서 보인 광기와 유대인들의 죽음에 대해 보인 침묵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전후에 그들이 보인 회개의 문화는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를 보여주었다. 이 책은 회개의 인간학과 희망의 신학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온순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던 사람들이 언제든 차가운 증오와 광기에 찬 폭력 집단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인간학적인 사유, 그리고 성서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통곡하던 무기력한 베드로를 평화의 사도로 바꾸신다는 신학적 사유의 결합이다. 신학은 사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다.

거룩한 땅 지구를 피로 물들이는 전쟁과 그 속에서 죽어가는 어린아이들과 무고한 사람들. 전쟁을 어린아이들의 게임처럼 묘사하고 약자와 약소국을 조롱하는 미친 정치인들. 세상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