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있는 대학에 있을 때 집의 아이들을 태우고 근처 지방을 많이 돌아다녔다. 말하자면 유람을 많이 했는데, 어딘가 장소는 기억나지 않지만, 시골 마을을 지나는데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큰 돌비석이 서 있었다. 그 글씨를 보는 순간 눈이 밝아지면서 강렬한 느낌이 내 몸과 마음을 휘어잡았다. 언젠가 학교에서 배워 익숙한 문구인데, 청년 시절이 지나고 갓 마흔이 된 나를 다시 불러 세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성서에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 골수를 쪼갠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그날 나의 영혼 골수를 쪼개는 글씨를 마주친 셈이다.
백세청풍이란 쉽게 말하면 ‘영원히 맑은 바람으로’라고 새길 수 있는데, 곧은 기상을 잃지 않고 혼탁한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선비의 절개를 가리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는 상 나라 말기의 인물인 백이와 숙제가 새롭게 일어난 주 나라의 벼슬 제안도 거절하고 주 나라에서 나는 식물도 먹지 않아 결국 굶어 죽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얘기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는 <열전>이란 대목이 있는데, 여기에는 중국의 고대국가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BC 2세기 당시까지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평이 들어 있다. <열전>에 나오는 첫 번째 인물이 백이숙제이니, 사마천이 백이숙제를 만인의 정신적 사표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고사와 무관하게 ‘백세청풍’이란 말 자체가 당시의 나를 사로잡았다. 그곳은 아마 야은 길재의 절개를 기리는 고장이었던 것 같다. 원래 길재는 구미 사람인데 왜 충청도 작은 마을에 그런 비석이 서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길재를 기리는 서원이 근처에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고려말 공민왕 때에 태어난 야은 길재는 고려 말의 개혁 세력이자 나중에 조선의 건국 세력이 되는 신흥 사대부들과 어울렸지만,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뜻을 달리했다. 조선의 임금 태종이 길재를 등용하려고 했으나, 그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서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의 행적이 상 나라 말기의 백이숙제와 비슷해서 조선 사람들이 백세청풍이라는 말로 그의 기품을 기억하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야은 길재는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와 함께 삼은(三隱)으로 불리는데, 세 사람은 모두 행적이 비슷했다. 그들은 고려 사회를 개혁하는 데에는 신흥 사대부들과 생각이 같았고 일정한 기간까지 힘을 합해 일했으나 조선 건국에는 반대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선택이 꼭 옳았다고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선악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후에 집현전 학사 중에는 단종 복위를 주장하던 사육신과 생육신이 있었지만, 신숙주 같은 사람은 세조 정권에 참여했다. 성삼문 같은 사육신파는 신숙주를 반역자로 지탄하고, 백성들은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신숙주를 비난했던 것 같다. 쉽게 상하는 나물의 특성을 보고 신숙주와 같다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신숙주는 세조 정권에서 훌륭한 일을 많이 했는데, 그가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와서 쓴 책 <해동제국기>는 세밀한 일본 지도와 일본의 문화에 대한 소개 그리고 국가 방위에 도움이 될 정보로 가득하여, 조선 시대의 대일 관계에서 국방과 외교를 위한 중요한 서적이 되었다. 어찌 보면 신숙주 같은 인재가 세조를 거역하고 죽는 것보다 살아남아서 나라를 위해 많은 공적을 남긴 것이 더 잘한 일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인간사를 두고 쉽게 선악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야은 길재 역시 마찬가지이니, 올곧은 마음으로 권력의 유혹을 뿌리치고 독야청청 깨끗함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수도 있다. 어차피 나랏일을 하는 정치인이라면 시대를 잘 판단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게 나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세청풍 같은 문구가 머리를 맑게 해 주는 것은 아마도 세상의 혼탁함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돈이 최고다. 마르틴 루터가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한 첫 계명을 가리켜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지 말라’는 뜻으로 풀었는데, 루터는 현대 사회를 예언한 것 같다. 돈이 된다면 안 하는 일이 없으니, 서민들의 피눈물이 나는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돈을 가지고 전 세계를 찾아다니며 이리저리 굴려서 멀쩡한 기업을 무너뜨리고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일이 금융자본주의의 꽃으로 각광 받지를 않나, 심지어 대량 학살의 참극이 벌어지는 전쟁을 이용해서 떼돈을 버는 정치인들이 세계의 지도자 행세를 하지 않나,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니 일반인들도 어떻게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큰돈을 가지려는 심산으로 머리를 굴리면서 죄의식이 사라지고, 그게 자식 교육에까지 이르러 기저귀 찬 어린아이에게 명문대학 입시를 위한 주입식 교육을 시작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상이 그럴수록 종교는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목사들이 예수를 팔아가며 추종자들로부터 헌금을 모아 가족회사를 운영하고 돈의 힘으로 다시 자기 세력을 키우는 일을 버젓이 하는데도 탈 없이 흘러가는 세상이 되었다.
이천 년 전에 맹자는 이렇게 탄식했다.
“하늘의 벼슬이 있고 사람의 벼슬이 있다. 인의충신(仁義忠信)의 덕, 그리고 선을 즐거워하며 싫증 내지 않는 것, 그것이 하늘의 벼슬이다. 공경대부의 지위는 사람의 벼슬이다. 옛날에는 하늘의 벼슬을 잘 닦으면 사람의 벼슬이 뒤따라 주어졌다. 요즘 사람들은 사람의 벼슬을 얻으려고 하늘의 벼슬을 닦는다. 그리고 사람의 벼슬을 얻은 후에는 하늘의 벼슬을 버리니, 미혹됨이 심하다. 마침내 반드시 망하리라.”(有天爵者 有人爵者. 仁義忠信 樂善不倦 此天爵也. 公卿大夫 此人爵也. 天爵者 德義可尊 自然之貴也. 古之人 脩其天爵而人爵從之. 修其天爵以爲吾分之所當然者耳. 人爵從之 蓋不待求之而自至也. 今之人脩其天爵 以要人爵旣. 得人爵而棄其天爵 則或之甚者也. 終亦必亡而已矣)
2천 년 전 맹자가 탄식한 상황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2천 년이란 기간은 길지만, 사람의 마음이 진화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일지 모른다. 그런데, 유교에서는 벼슬을 하는 정치인에게 세상의 모범이 될 도덕성까지 같이 요구한 종교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정치가 도덕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고, 모범적 도덕성을 위해 교회라는 공간을 따로 마련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로부터 독립된 곳이라는 데에 존재 이유가 있다. 교회는 세상과 독립된 맑은 정신으로 세상의 죄를 간파하고 바른 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공동체이다. 교회가 그 역할을 해 주어야만 탐심과 증오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상을 살리고, 인간의 불행과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목사들이 부와 자기 이름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다. 맹자는 이미 벼슬을 위해 하늘을 저버리는 인간사를 탄식했고, 초대 교회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재물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교인들의 행태를 이미 탄식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돈을 목적으로 삼고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자는 가치가 전도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돈을 이용하지 않고, 돈을 위해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 안에도 땅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이 섞여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은, 교인이라고 모두 구원받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렇게까지 말했던 것은 교회가 타락하면 정말 인류를 구원할 길이 없으리라는 경각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그런 일들이 너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정치적 증오심이 교회의 타락을 감추고 범죄자들을 보호하는 갑옷 역할을 하고 있다.
세상이 이처럼 혼탁해진 이 때에, 백세청풍이라는 네 글자는 신선한 의미로 다가온다. 말년에 자기 고향에 은거했던 야은 길재는 이런 시를 남겨 놓았다.
시냇가 초가집에 홀로 한가로운데(臨溪茅屋 獨閑居)
달 밝고 바람 맑으니 흥이 넉넉해지네(月白風淸 興有餘).
외부 사람 오지 않고 산새 울 때에(外客不來 山鳥語)
대나무 숲 평상으로 옮겨 가 누워서 책을 보네(移床竹塢 臥看書)
오늘날 세상을 보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고백이 가장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고백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원래 성서의 영성도 그런 것이다. “사람은 평화를 만들 능력이 없다”라는 르네 지라르의 말도 귀에 생생하다. 젊은 시절에 답답하게 여겨졌던 우리 조상들의 ‘은거’(隱居)의 전통이 새삼 신선하게 다가온다.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이 가을에, ‘달 밝고 바람 맑은'(月白風淸) 이 가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