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갑자기 금융 치료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요즈음 갑자기 부각된 용어인 것 같은데,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금고나 징역형을 살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당하게 얻은 수익을 철저하게 추적해서 압수하거나 벌금을 물리는 걸 가리켜 금융 치료라고 하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수억이나 수십억 돈을 가질 수 있다면 10년 정도의 옥살이는 감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으니, 그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구금되어 자유를 박탈당하는 게 아니라 불법으로 손에 쥔 돈을 빼앗기는 일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파렴치한 불법에 대한 효과적인 응징의 방법으로 금융 치료라는 말이 쓰이는 것 같다.

그런데, 학생들과 함께 아우구스티누스의 편지글들을 읽자니, 금융 치료의 선구자가 다름 아닌 1600년 전에 북 아프리가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생각이 든다. 408년에 북 아프리카의 소도시 칼라마(Calama)에서 폭동이 벌어졌다. 주민들이 토착 신을 섬기는 축제를 벌이는 와중에 교회를 공격하고 사람이 죽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로마제국은 4세기 후반에 이미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고, 이교 의식을 거행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따라서 칼라마 시민들의 이교 축제는 불법이었고, 그 지역의 가톨릭교회 사제가 그들을 찾아가 만류했다. 이에 격분한 주민들이 교회에 돌을 던지고 방화하고 마침내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많은 숫자의 주민들이 체포되었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넥타리우스라는 로마의 고위 관리가 주교인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탄원의 편지를 썼다. 그는 칼라마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넥타리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를 5백 년 전의 키케로와 같은 위대한 정치사상가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 가톨릭교회는 재판관할권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를 공격한 범죄의 재판은 교회가 관할했던 것 같다. 그래서 넥타리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관용을 요구한 것이다. 그가 요구한 것은 범죄에 가담한 주민들이 처벌받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고향의 주민들이 로마 법에 의해 사형당하거나, 고문당하는 일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 관습적으로 이루어지던 축제에 대해 애착도 있었을 것이다. 국가의 재판과 달리 교회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는 일을 하는 자리가 아니냐는 것이 그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관용을 간청한 근거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폭력을 저지른 범죄자들을 처벌하지 않으면 악행이 모방될 수 있다면서 처벌의 불가피성을 말한다. 그는 사회의 치안을 위해서 공권력의 형벌권을 인정하는데, 다만 처벌하는 측의 주관적 태도를 중시한다. 당한 피해에 대한 복수심으로 처벌하면 안 되고, 범죄자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개선(reform)의 기회를 주는 마음으로 처벌해야 한다. “지나간 과거를 복수하고픈 증오심이 아니라 미래의 개선을 위한 마음으로” 처벌한다. 범죄자에 대해서도 친절을 잃으면 안 되며, 그의 영혼이 장차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 곧 인간에 대한 선의(good will)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범죄자에 대한 선의를 가지는 것은 처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놀랄만한 인권 보호의 장치를 마련했다. 우선 고문 금지이다. 당시의 로마법에 의하면 고문으로 인한 자백도 증거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조사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한 고문을 금지했다. 그리고 방화와 살인에 연루된 사람이라고 제보가 들어와도 피의자를 범인으로 단정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둘째로 범죄자의 신체를 손상시키는 형벌을 금지했다. 채찍이나 몽둥이로 죄인을 때리거나 몸에 상처를 내는 형벌을 금한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사형을 금지했다. 범죄자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어서 그의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 받아들여질 여지를 두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방화와 살인을 저지른 군중에게 내린 형벌은 재산 몰수였다. 일종의 금융 치료였던 것이다.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재산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몰수하게 하였다. 로마법의 가혹하고 폭력적인 형벌로부터 범죄자를 보호하면서도 고난을 통해 폭력적 영혼이 치유되기를 바란 것이니, 금융 치료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한편, 당시에 노예 상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불법으로 사람을 유괴하거나 납치하여 지중해 건너 로마제국의 번영하는 도시에 가서 팔아넘기는 일들이 성행했다. 문헌에 보면 노예 상인은 주로 갈라디아인들이 많았다. 갈라디아는 지금의 터키 지방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북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유괴하고 납치했으며, 납치된 사람들을 북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히포에서 배에 태워 떠났다. 히포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 자금으로 불법 노예무역을 추적하고, 감금되어 노예로 팔려나가기 직전의 사람들을 구해냈다. 그는 자금을 마련하느라고 교회 예배에 사용하는 기물들을 팔기도 했다. 구출된 사람들은 교회에서 보호하거나, 교회가 비좁으면 성도들의 집에서 돌보도록 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도록 주선했다. 그만큼 그는 사람의 목숨과 한 사람의 인생을 귀하게 아는 휴머니스트였는데, 사람은 하나님에게 속한 존재라는 기독교 신앙이 그를 인본주의자로 만들었다.

당시의 로마 법에 의하면 사람을 납치하거나 유괴해서 노예로 파는 자는 철심이 박힌 채찍으로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맞고 감옥에 가야 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법정이 그런 폭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다만 노예 상인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추적해서 몰수하는 형을 내렸다. 범죄수익을 몰수당한 노예 상인들은 치명적인 손해를 입은 셈인데, 말하자면 금융 치료를 통해서 공권력의 폭력을 막는 한편 다시는 인신매매를 하지 못하도록 자금줄을 끊는 처벌을 준 셈이다.

420년 경에는 어떤 채무자가 채무를 갚지 않고 교회를 도피처로 삼아 피신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에 교회는 로마 법에 의해 도피처로 인정되었다. 죄인이라도 교회로 도망가면 보호받을 수 있게 만든 법령이었다. 그런데, 교회로 피신한 그 채무자에게는 보증인이 있었고,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는 바람에 보증인이 큰 손해를 보게 되었다. 상황을 보면, 채무자는 돈을 갚을 여유가 있었지만 자기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보증인에게 채무상환을 덮어씌우기로 작정하고 교회로 피신한 것 같다. 보증인은 교회에 가서 채무자를 내놓으라고 항의했고, 그 일로 그는 그 교회가 속한 교구의 주교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합법적인 교회의 처분에 항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보증인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편지해서 자신의 사정을 알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태를 조사한 끝에 보증인을 파문한 주교의 결정이 성급하고 감정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증인의 잘못은 없으며 파렴치한 채무자를 교회가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이었다. 주교가 한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교회의 권위에 흠집을 내는 것인데, 교회의 권위와 정의 사이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택한 것은 정의였다. 그는 파문을 결정하는 주교도 죄인이며, 따라서 주교의 결정이라고 모두 옳다고 여겨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사람에게 벌을 줄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장소인 교회가 사람들 사이의 믿음을 저버린 자를 계속 감싸고 있을 수는 없다.”

채무자는 채권자와 보증인 앞에서 자신의 채무를 갚겠다고 선서를 한 후에 돈을 빌렸고, 채권자와 보증인은 그 선서를 믿고 돈을 빌려주었는데, 빚을 갚아야 할 시점에 갚을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돈을 지키려고 교회로 도망한 사람을 교회가 보호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그리하여, 보증인을 파문시킨 주교는 파문을 거둬들여야 했고, 파렴치한 채무자는 교회에서 나가 자기 돈으로 빚을 갚아야 했다. 돈 때문에 사람을 배신하고 신의를 깬 사람의 악한 행동이 보호받지 못하게 하고, 그 사람은 돈을 갚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유도하여 그의 영혼을 정화시킨다는 점에서, 이우구스티누스의 조치는 금융 치료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인간에 대한 신의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확장되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410년 경에 농민 무장단체인 서컴셀리온과 이단인 도나티스트들이 가톨릭 사제 두 명을 공격해서 한 명은 죽이고, 또 한 명은 눈을 파고 손가락을 절단하는 일이 벌어졌다. 로마법에 의하면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상해를 가한 자는 똑같은 방식으로 신체를 처벌하게 되어 있었다. 그들을 처벌하는 재판관할권은 로마총독과 군사령관에게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북아프리카의 총독과 군사령관은 모두 아우구스티누스를 존경하던 기독교인들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들에게 기독교인의 양심대로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그들을 사형에 처해서는 안 되며, 범인의 눈을 파고 손가락을 절단하는 짓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렇게 복수하는 것은 죽은 사제들에 대한 모독이고,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라고 설득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죽이고 싶으면 차라리 놔주라고 말한다.

도나티스트파는 교회 전체를 위협할 정도의 큰 세력을 형성했을 만큼 위험한 집단이었는데, 그들의 폭력에 대해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복수하는 형벌에 반대했던 것이다. 그들도 인간이라는 이유에서인데,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간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그래서 그 인격의 존엄성을 존중받아야 할 자이다. 범죄인에게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들에게 맞는 형벌로 제안한 것은 가두어 두는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금고나 징역에 해당하는 처벌이다. 범죄자의 몸에는 손을 못대게 하고 가두어 놓게만 한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현대에 자유형이라고 불리는 형벌의 선구자라고 불릴 수도 있겠다.

411년에 카르타고 회의를 통해서 도나티스트파가 이단으로 정죄되면서 내려진 조치는 재산몰수였다. 그들의 개인 재산을 몰수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점령했던 교회들을 가톨릭 교회로 되돌리는 작업이었다. 북 아프리카에서 가톨릭교회가 유일한 기독교 교회로 인정받게 되는 금융 치료라고 할 수 있다. 범죄인도 사람이므로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며, 그에게 선의를 가지고 인격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사랑과 은혜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형벌 신학이었다. 그 결과 그는 금융 치료와 자유형의 선구자가 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