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에는 어찌 이렇게 하늘이 맑은가. 오랜 만에 우리나라의 가을하늘을 되찾은 것 같다. 지난 여름 터키와 그리스 그리고 이탈리아의 맹렬한 산불을 보며 apocalyptic 한 세상이 걱정스러웠는데, 아직도 하늘은 우리를 축복하는구나. 어젯 밤 천둥소리 요란하게 내린 비로 길 또한 깨끗하니 어찌 산들바람 따라 천천히 걸으며 즐기지 않을 수 있으랴.
검게 물 먹은 소나무 깨끗한 아침 햇살에 높이 하늘 향해 기지개 펴고, 이끼 낀 느티나무 그 잎이 여전히 푸르구나. 올 가을에는 어찌 하늘이 이리 맑을까. 비에 씻긴 듯 구름 또한 하얀 빛으로 투명하게 흐르네. 비좁은 사람들 틈새 위로 하늘은 여전히 우리를 축복하는구나.
한가위 공연으로 55년생 여가수가 노래하는데 깊은 슬픔이 가락을 지어 물흐르듯 흘러가는구나. 슬픔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지난 세월의 아픔을 노래하는 그 담담하고 조용한 초로의 얼굴, 인간의 슬픔을 울려 승화시키네. 땅에 깔려 은은히 전해지는 에밀레 종소리처럼. 그 아픔이 하늘을 울리는 피에타 상의 마리아처럼. 고요한 절규로 세상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삼은 테오토코스. 피에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