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무속에는 무당들이 모시는 신이 있다. 무속신화에 나오는 신들도 있지만 최영 장군이나 조선시대의 남이 장군처럼 억울하게 죽은 유명한 장군들도 민중들의 가슴에 남아 내려오다가 무속의 신으로 모셔졌다.

사진은 은평구에 있는 금성당이다.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나주의 금성대왕 신앙이 한양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굿당이다. 세 군데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진관동에만 남아 있다. 금성당에서는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도 신으로 모신다. 금성대군은 단군복위 운동을 추진하다가 역모죄로 처형된 비운의 왕자이다. 역시 민중의 가슴에 담겨 내려오다 무당들의 신으로 모셔진 것이다.

이처럼 무속에서 모시는 신들은 억울한 일을 당한 역사적 인물이 많은데, 무당들의 사설에 등장하는 무속신화의 주인공들 역시 그렇다. 한국의 대표적 무속신화인 바리데기 공주나 당금 애기 설화를 보면 모두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죽을 고생을 한 여인들이 나중에 오히려 영약을 얻어 자기를 버린 부모를 죽음과 위기에서 구해내는 얘기이다. 금성대군이나 바리데기 공주나 모두 억울한 일을 당한 한 많은 인물들이다. 이들이 무속의 신이 되고, 무당은 그 신들을 몸주로 삼아 병을 고치고 마음을 치유하는 굿을 했다.

희생된 자가 신이 되는 것은 동서양 신화의 공통점인데, 우리나라 무속 신화에는 독특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바리데기나 당금 애기가 죄없이 희생되었다는 점이 신화 속에 밝혀져 있다. 그래서 한국의 무속신화에는 어떤 메시지가 있다. 무고하게 희생당한 자는 세상을 구원할 특권을 가진다. 악울한 한을 증오하거나 원수 갚는데 쓰지 않으면 오히려 세상을 구원할 힘이 니온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데에 구원의 힘이 있다는 점, 그것을 우리나라 무속 전통에서 읽을 수 있다.

무당들이 역사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한 의인들이나 신화 속의 바리데기 공주를 몸주로 삼아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치유에 나서는 행위 속에는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유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의 무당들은 민중의 사제 노릇을 했던 것 같다. 세상으로부터 천시받는 자로서 그들은 한많은 조선의 민중들을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고 신의 힘을 빌어 그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 같다.

그 점에서 일본의 신도와 다르다. 전통적으로 신도의 사제들은 천시받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일본 신도의 여러 신화들도 한국 무속신화와 색깔이 다를 것 같다. 근대에 들어오면 일본은 명치유신 때에 일종의 무속인 신도를 국가신도로 만들어 천황을 대제사장으로 만들었다. 일본에 거주하는 후배 학자들의 얘기를 들으면 일본 천황의 제일 중요한 임무는 제사지내는 것이라 한다. 일본은 정치 위에 종교를 두고 국가의 최고 자리에 제사장을 두고 있는 셈이다. 언뜻보면 교황이 황제 위에 있던 중세유럽과 비슷하다. 그러나 일본의 신도는 오직 국가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교회가 영원한 진리의 이름으로 국가권력을 견제했던 중세 기독교왕국(Christendom)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조선에서는 매우 수준높은 인문주의 철학인 유학 때문에 샤머니즘은 국가종교가 될 수 없었다. 다만 유학은 사대부들의 점유물이었고 위로의 역할이 없었기 때문에 민중들은 무속이라는 자연종교에서 위로의 길을 찾았던 것이다. 유학과 무속의 텃밭이었던 조선에 들어온 한국 기독교의 정체는 어디에 있을까.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학자들과 대화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은 진관동의 금성당 2021년 9월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