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기도회를 마친 후에 김정희의 세한도 도록을 꺼냈다. 성서와 함께 세한도를 보며 한 해를 출발하고 싶다. 세한도 도록은 2021년 3월에 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 특별전에 갔다가 정 선생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유배 중에 그린 그림이다. 제자 이상적의 변치 않는 충정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그린 그림이다. 1440년 제주도에 위리안치된 추사는 2년 후 아내가 죽은 것도 모를 정도로 절해고도에서 고독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에 제자 이상적이 역관으로 연경을 오가며 구한 귀한 서적을 수레에 실어 스승에게 보내었다. 세상 풍조와 달리 초췌해진 자신을 잊지 않고 충정을 표현한 제자의 마음에 추사는 크게 감동했다. 1444년 추사는 논어의 구절로 그림 제목을 삼아 세한도를 그리고 그림 옆에 고마움을 표하는 글을 붙여 이상적에게 보냈다.
이상적은 연경에 가는 길에 추사의 그림을 가지고 갔다. 그는 자신을 위해 연회를 베푼 청나라 학자들의 모임에서 추사의 그림을 내보였다. 추사는 이미 청나라에서도 유명한 학자였다. 16인의 청나라 문인들이 세한도의 감상문을 적었다. 이후 이상적은 자신의 제자 김병선에게 세한도를 물려 주었고, 김병선을 이어 그의 아들 김준학이 세한도를 간직했다. 김준학은 1914년에 발문을 써서 맨 앞에 붙이고 세한도를 오늘날 형태의 두루마리로 만들었다. 청나라 문인 16인과 한국의 김준학, 이시영, 오세창, 정인보가 쓴 글이 세한도 뒤에 배치되어 있다.
그 후 세한도는 경성제국대학의 일본인 교수이자 김정희 연구가인 후지스카 지카시의 손에 들어갔다. 그는 일본의 패색이 짙어진 1944년에 도쿄로 돌아갔고, 세한도 역시 한국 땅을 떠났다. 그 소식을 접한 손재형이 후지스카의 집을 찾아가 두 달 간 조른 끝에 세한도를 다시 한국 땅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1970년대 초에 세한도는 다시 고서화 수집가인 손세기의 손에 들어갔고 2020년 정월에 그의 아들 손창근 선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김정희는 글에서 논어의 글귀를 적었다. “한 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야 송백이 더디 시듦을 알 수 있다.” (세한연후 송백지후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제자 이상적의 변치 않는 마음과 신뢰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인용이다. 최소한의 물로 먹을 갈아 마른 붓에 묻혀 쓱쓱 그려나가는 화법은 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것이라고 한다. 세한도는 이미 동아시아의 예술세계에서 최고 걸작품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절해고도의 유배생활 중 마음의 감동이 일어 흰 종이에 축적된 실력으로 그려나간 소나무 두 그루와 측백나무 두 그루. 차갑고 쓸쓸한 대기 속에 우뚝 선 의연함. 그것은 차가운 세상 인심을 거슬러 지조를 보인 제자 이상적의 마음이고, 또한 유배 생활 속에서 자신을 추스르는 김정희의 마음이리라. 그 두 마음을 그려낸 예술인 김정희의 도심이 잘 드러난다. 쓸쓸함이 없다면 거짓이요 의연함이 없다면 허망한 것이니, 영웅적이지 않으나 소박하고 꿋꿋한 자연을 닮은 김정희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준다. 세한도의 아름다움은 한반도에서 성장한 진실과 진리의 영성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사진. 세한도 부분. 세한도 도록에서 촬영(202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