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를 두고 몇 사람과 생각을 나누었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에 교양 선택으로 철학 강의를 들었다. 교수님은 지팡이를 짚고 교단에 서서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칸트와 헤겔을 모르면 지성인이 아니지.” 수업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송 아무개 교수님이 가르치는 과학철학 관련 수업도 들었던 것 같다. 교수님을 찾아가 물었다. “대학생으로서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해 주십시요.” 교수님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라고 했다. 당장 책을 사서 폈는데, 첫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암호 같은 얘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신학대학원에 가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식론에 대해 논문을 썼는데, 왜 내가 인식론을 택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인간의 앎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논문을 쓰면서 칸트와 비교하기 위해 순수이성비판을 읽었다. 독일어 책을 들고 개념 하나 하나를 노트에 정리하며 읽어나가니 좀 이해가 되었다. 그때의 노트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신대원을 마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는데, 지도 교수인 바하니안 교수님이 쉬바이처를 읽으라고 하셨다. 쉬바이처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했고, 의사이자 아프리카의 성자로 알려져 교회 목사님도 설교를 여러 번 하셨다. 나도 관심 있게 그의 전기를 여러 번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는 의사이기 전에 철학박사이고 신학박사였다. 그는 알사스 사람으로서 독일 치하에서 독일어로 공부하고 책을 썼다. 그가 신학과 철학과 의학을 공부한 대학이 내가 유학갔던 스트라스부르 대학이었다.
장서가 꽉 차 있는 신학대학 도서관에서 쉬바이처 전집을 빌려 읽었다. 그때 그의 신학 저술인 <역사적 예수 연구사>와 <바울 신비주의>를 읽었다. 그리고 그의 철학 저서인 <문화와 윤리>를 읽었다. 그 책의 서문에서 쉬바이처는 이렇게 말했던 같다. “칸트와 헤겔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모두 그들의 영향 아래에 있다. 정치와 문화 그리고 교육에 이르기까지 근대화된 제도는 그들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학 가서 다시 칸트를 만난 것이다.
박사 논문을 쓸 때에는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이용했다. 논문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베르그송의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은 사실상 칸트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를 새로운 각도에서 보면서 칸트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논문에 들어간 리쾨르나 레비나스 등의 사상가를 설명할 때에도 칸트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었다. 리쾨르는 칸트를 한계의 철학자로서 좋아하면서 자신의 종교철학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는다. 레비나스는 칸트를 중시하지만 기본적으로 비판적이다. 칸트가 자유를 핵심 개념으로 삼으며 근대의 기초를 놓았다면 레비나스는 근대의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자유보다는 책임을 더 중시한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40대 중반이 되어 우리나라 사상에 관심이 갔다. 유학의 깊이와 정수를 보여준 퇴계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사단칠정론을 공부하면서 칸트가 떠올랐다. 칸트를 공부했기 때문에 사단칠정론에 대해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칸트는 근대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기초를 놓은 점에서 중세 철학의 대가인 퇴계와 많이 다르다. 그러나 영국의 자유주의와 달리 칸트 철학은 일종의 도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정진을 중시하기 때문에 퇴계와 통하는 점이 많았다. 퇴계의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퇴계학 전문학술지인 <퇴계학보>에 몇 편 발표했는데, 그 중에는 칸트의 동기론에 비추어 퇴계의 이발을 분석한 논문도 있다. 그 논문들은 책으로 출판되었다.
18세기 말에 출판된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는 종교를 윤리로 바꾼 책이라는 평을 받는다.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에 기조를 둔 현대신학은 칸트의 영향을 받아서 탄생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은 말하자면 종교 철학의 교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신학자인 내게 흥미로운 것은 칸트가 기독교의 신앙언어를 도덕적 헌신의 관점에서 모두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원죄론, 속죄론, 기독론, 교회론, 사탄론, 삼위일체론 등을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로 재구성해 놓았다.
신앙을 도덕으로 바꿀 수는 없다. 칸트처럼 신앙을 모두 도덕으로 바꾸면 신앙이 지니는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 가치를 상실한 신앙은 독단으로 흐르고 매우 폭력적인 광신을 낳을 수 있다. 그 점에서 칸트의 도덕종교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림: 손에 들고 있던 책 위에 스트라스부르 신학대학 건물을 그리다. 2016년 7월 21일 오후 3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