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는 늘 6월 말과 7월초에 걸쳐 있었다. 쏟아진 빗물이 마당 안에 여러 개의 골을 만들고, 골 따라 흐른 물들이 합해져 제법 큰 물이 되어 몰려 내려갔다. 조그만 마당에서 벌어지는 맑은 물들의 율동을 내다보며 실내의 안온함을 느끼곤 했다. 장마가 끝나면 땡볕. 어머니는 빨래를 내다 너느냐고 분주했었다. 장마철이면 늘 반복되는 삶의 모습이었다.

언제부턴가 철 잃은 기러기처럼 때가 되어도 비가 안 오더니 철 지난 비가 폭우가 되어 수시로 쏟아졌다. 아예 장마철이란 것이 없어진 듯 싶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때에 맞추어 장마가 시작되는구나. 6월 하순 어느 날 한강 하류의 능곡 평야에도 천지 사방으로 먹구름이 꽉 들어차고 습한 바람이 분다. 조그마한 키의 푸른 벼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저 멀리 행주 산 너머로는 비가 뿌리는지 뿌옇게 안개가 끼었다. 한강 너머 저 쯤에 양천 현감으로 있던 겸재 선생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담을 만한 풍경이다.

매년 이쯤 되면 읊는 시가 있다. 10년 쯤 전에 이 선생님이 멋진 필치로 써 준 시다. 추사 김정희의 <취우>(驟雨 소나기)라는 시다.

樹樹薰風 葉欲齊(수수훈풍 엽욕제) 훈훈한 바람 수수수 소리내어 불어오고, 나뭇잎들 나란히 나 란히 줄을 맞추네

正濃黑雨 數峰西(정농흑우 수봉서) 새까만 구름 비 몰아오고, 저 멀리 서쪽에서부터 산봉우리 세어가며 몰려 오니

小蛙一種 靑於艾(소와일종 청어애) 조그만 개구리 한 마리, 쑥보다 더 푸른데

跳上萑梢 效鵲啼(도상환초 효작제) 갈대 끝으로 뛰어 올라, 꺽꺽꺽 까치처럼 울어대는구나

번역이 원문의 맛을 다 살렸는지 모르겠다. 하늘을 뒤덮은 장대한 규모의 먹구름. 그때 땅에서 튀어 오른 작디 작은 청개구리 한 마리. 바야흐로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숨 막히는 고요함을 뚫고 개구리는 울어 댄다. 작은 개구리 소리가 울려 퍼진다. 부는 바람결에 공명이 되어 천지 사방을 채운다.

청개구리는 세상사를 거스른 김정희 자신인가? 뭐, 그게 아니라면 어떤가.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이 시를 그냥 읽어도 얼마나 좋은가. 그냥 자연 시로 읽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옛 문인들의 시가 주는 멋이 있다. 참으로 소박한 여유와 평화 그리고 해학과 유머가 넘쳐 나는 시가 아닐 수 없다.

사진: 능곡평야의 지는 해(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