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대 중반, 우리 조상들의 사상에 대한 관심 때문에 유학을 공부하기 시작할 무렵에 인터넷에서 동양화 한 폭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월전 장우성의 <귀목>이라는 그림이다. 채색 동양화이다. 그 그림에 한없이 빨려 들어가 다운 받아서 한동안 보고 또 보고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그림과 맞딱뜨린 나의 감정은 충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에게 풀 먹이고 소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소년은 풀을 한 짐 지고 간다. 그림에는 초점이 없다.

우선 주인공이 없다. 채색 동양화 속에 사람이 주인공일 수 있는데, 소년이 주인공이라기에는 그림에서 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덩치도 크지만 정면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소의 눈망울이 크다. 그렇다고 소가 주인공일 수는 없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흰 적삼을 걸친 소년의 맑은 눈망울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귀가 길 위에 푸른 풀이 돋아 있다. 소와 소년의 발 밑에 풀들이 일어나 있다. 풀에 눈은 없지만 꽃들이 예쁘게 피어 살아 있다. 화가는 풀들도 단순히 배경으로 그린 것 같지 않다. 분명히 이 그림에는 소와 소년과 들풀이 같은 비중으로 평등하게 공존한다. 따로 주인공이 없어 초점이 없다.

그림의 전체 구도 뿐 아니라 소년의 눈에도 초점이 없다. 무슨 희로애락의 감정이 들어 있으면 소년이 그림의 중심이 되리라. 그러나 아무런 감정이 없는 눈이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아 초점이 없는 눈이다. 이전 일을 되돌아 보거나 내일 할 일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눈이 아니다. 그 점에서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고정되어 있다. 현재라는 시간은 길이가 없으니 순간이요 무의 시간이다.

소와 소년과 풀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자기 존재를 특별히 내세우지 않는다.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는 존재들. 그래서 무에 가깝지만, 그래서 생명에 충실하고, 그래서 존재에 흐트러짐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는 눈임에도 소년의 눈은 맑디 맑다. 이것이 자연주의 미학이고 우리 선조들은 여기서 자유와 해방을 느낀 모양이다.

19세기 말에 한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의 예술품을 보고 “꿈꾸는 것 같다”고 했는데, 특별한 초점도 없고 화폭의 대상들에게 특별한 의미 부여를 허락하지 않는 자연주의 미학이 준 충격을 표현한 말인 것 같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던 나의 40대. 역사 발전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고 또한 개인적으로는 자기 실현을 위해 애쓰던 40대 중반의 나에게 이 그림이 준 충격은 크다. 아마 그 때에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뭔가 모르게 나를 끌어당기는 데 어떤 특별한 의미 부여도 허락하지 않는 생명 그 자체의 세계. 너무 의미 추구에 몰두했던 나 자신에게 이 그림이 준 충격은 당혹감과 함께 어떤 해방감이었던 것 같다.

이후 나는 우리나라의 문인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오래된 새로움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겸재 정선의 그림을 많이 보고 공부도 했다. <인왕제색도>를 들고 그 그림을 어디서 그렸는지 장소를 찾아다닐 정도로 한때 겸재에 빠져 있었다. 지금의 양수리로부터 행주산성에 이르기까지 한강변의 풍경들을 그린 겸재의 한양진경에 나오는 십여군데의 장소를 찾아가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며 시를 한 수 씩 짓는 일은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일 년 반 전 은퇴 후 정말 수 십 년 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렸다. 목포 출신 동기와 후배의 안내로 남도 일대를 유람했다. 그때 새로 놓인 천사대교를 건너 신안의 많은 섬들을 구경하고 돌아오던 길에 압해도의 미술관에 들렀다. 멀리 우리가 방문했던 섬들이 점점이 보이고 은빛으로 빛나는 잔잔한 앞바다에는 고기잡이 배 한 척이 귀가를 서두르는 평화로운 풍경. 그 절경이 내려다 보이는 지점에 미술관이 있는데, 이름하여 <저녁노을 미술관>. 우암 박용규 화백의 전용 전시장이었다. 박용규 화백은 남농 허전의 외손인데 그의 작품을 시에 기부하고 시에서 전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그곳에서 화백을 직접 만나 그림에 대해 얘기를 들은 것은 큰 행운이었다. 휘드러진 소나무들 위로 수많은 백색의 학들이 마치 구름 위에 앉은 신선처럼 자리를 틀고 앉아 있는 큰 그림. 여백의 미와 함께 어우러진 이런 그림은 역시 동양화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눈을 사로잡은 작은 그림 한 점. 비스듬히 서 있는 적송 사이로 보이는 작은 집. 그 안에 보일 듯 말듯 앉아 있는 한 사람. 아마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 같다. 자연의 침묵과 도의 침묵이 사방을 빨아들여 희미한 인간 존재에게 해탈의 자유를 주는 듯한 분위기. 그 그림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사상과 철학을 두고 말하자면 나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낳은 서양 사상에 좀 더 큰 비중을 둔다. 그러나 그림은 서양화보다 동양화에 더 마음이 간다. 이것은 비단 내 마음의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 문명의 미래와도 관련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2020년 1월 워싱턴 DC에서 시카고 대학의 쉬바이커 교수와 토론할 때에도, 한국의 문인화에서 느낀 자연주의 미학을 퇴계 사상을 빌어 소개하며 신학적 과제로 제시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