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학

철학과 신학

신대원 졸업생들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참된 종교>를 읽고 있다. 오늘은 5장 이후의 서론부분. 11장에 가서야 본론이 시작되는 것 같다. 악의 문제, 존재 계층, 내면성의 원리 등 이후 기독교 신학에 사용되는 중요한 용어와 사유방식이 들어 있는 초기 작품이다. 서론은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플라톤 철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교와 이단과 분파에 대한 평가가 따른다. 오늘 읽은 인상적인 귀절. “말마디 몇이나 문장 몇 개만 바꾸면 자기네가...
예수회 신부와의 대화

예수회 신부와의 대화

한 예수회 신부는 오늘날 예배에 워십(worship)이 약화된 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 미사의 핵심이 worship에서 communion으로 이동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사제가 대중과 함께 전면의 감실(성체를 모신 조그만 방)을 향해 미사를 집전했는데,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사제는 성도를 마주보며 집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분이 염려하는 건 요즘 미사에 강론이 너무 길어졌고...
시간과 순간

시간과 순간

사도 바울은 늘 께어 있으라고 했다. 늘 깨어 있다는 것은 순간을 사는 걸 가리킨다. 현상학적 시간의 출발은 여기에 있다. 순간으로 쪼개면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는 없다. 이야기는 시간의 길이를 필요로 하는데 순간은 길이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 안에서 벌어진 갈등과 절망과 무기력의 자취를 잊고, 또 과거의 연장에서 성취를 꿈꾸는 미래를 버리고 영원한 현재인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순간의 시간이다. 흘러가는 세월을 넘어 수직적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야곱이 베델에서 천사가...
맑은 하늘

맑은 하늘

올 가을에는 어찌 이렇게 하늘이 맑은가. 오랜 만에 우리나라의 가을하늘을 되찾은 것 같다. 지난 여름 터키와 그리스 그리고 이탈리아의 맹렬한 산불을 보며 apocalyptic 한 세상이 걱정스러웠는데, 아직도 하늘은 우리를 축복하는구나. 어젯 밤 천둥소리 요란하게 내린 비로 길 또한 깨끗하니 어찌 산들바람 따라 천천히 걸으며 즐기지 않을 수 있으랴. 검게 물 먹은 소나무 깨끗한 아침 햇살에 높이 하늘 향해 기지개 펴고, 이끼 낀 느티나무 그 잎이 여전히 푸르구나. 올 가을에는...
가을이 오네

가을이 오네

아침에 시간을 잊고 천천히 산책하는데 살갗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이 고맙다. 어제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학생들과 읽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프랑스 대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만큼이나 중요한 문서라고 나는 평가한다. 근대를 연 프랑스 혁명과 영국 혁명의 정신적 기원이 종교개혁에 있다는 것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바이다. 말하자면 자유와 평등의 기치를 내세운 근대의 시작점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 어제...
지난 여름

지난 여름

지난 여름 설악산 밑의 조그만 시골 동네에 달이 떴다. 밤하늘 밑의 논에 달이 비치고 논 바닥에서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생명의 축제와 고요한 달빛의 조화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