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의해서 christianethics.kr@gmail.com | 5월 9, 2022 | Uncategorized
신학자로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평화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성서의 중심 주제는 평화라고 할 수 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평화에서 시작해서 평화로 끝난다. 누가복음에는 그리스도가 탄생할 때에 하늘에서 들린 천군천사의 장엄한 노래를 전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이들에게 평화로다.” 그리스도의 탄생 메씨지는 이 땅의 평화이다. 한편 요한복음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한...
에 의해서 christianethics.kr@gmail.com | 4월 11, 2022 | Uncategorized
1. 목련이 지기 전에 더 보려고 천천히 동네를 걸었다. 아침, 신선한 바람에 떨어지는 목련 잎이 얼굴에 와 닿는다. 이 무슨 호강인가. 바람 실은 꽃잎이 콧등을 스치는 순간의 호강 순간과 찰라, 자유와 영원, 미학과 종교 목련 나무 밑에 한참을 서 있었다. 2. 어느날 갑자기 동네 벛꽃이 일제히 피어났다 늘 그렇듯이 어느날 갑자기 마른 가지들 위를 흰 벚꽃이 뒤덮었다 무에서 유로의 전환 이 무슨 아름다움의 잔치인가 햇살에 비쳐 더 눈부신 공중의 꽃길 존재의 잔치 내 영혼은...
에 의해서 christianethics.kr@gmail.com | 3월 13, 2022 | Uncategorized
1. 우크라이나의 아름다운 도시들이 무참하게 파괴되고 있다. 피난 길을 떠나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눈물에는 헤어진 아빠와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슬픔이 담겨 있다. 살아남은 노인들은 삶의 역사가 담긴 거리와 건물들이 사라지는 것을 애통해 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훔친다. 푸틴의 침략 전쟁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세력이 교회이다. 러시아 정교회는 잘못된 신학을 가지고 신의 이름으로 푸틴의 전쟁을 축복한다. 또한 교인들을 움직여 국민의 이름으로 푸틴의 전쟁을...
에 의해서 christianethics.kr@gmail.com | 2월 27, 2022 | Uncategorized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가진 게 많은 자는 더 가지려 하고, 영토가 큰 나라는 그걸 지키려고 더 영토를 넓히는 제국주의에 빠진다. 그 탐욕이 불러오는 인간의 불행과 무고한 자들의 희생. 딸 하나를 둔 우크라이나의 젊은 아버지가 예비역으로서 총을 들고 전쟁터로 나가면서 결연하게 말한다. “우리 후손은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게 해야합니다. 우리 딸이 아버지를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으로 기억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에 의해서 christianethics.kr@gmail.com | 2월 9, 2022 | Uncategorized
종교가 타락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부패와 타락이 있기 마련이고 종교라고 예외가 아니다. 어쩌면 종교가 더 심할 수도 있다. 다만 그 속에서도 자기 길을 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을 뿐. 종교의 존재 이유는 사람을 보호하는 데에 있다. 종교는 세상 한 가운데에 있는 세상 밖이다. 세상 돌아가는 방식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둠으로써 종교는 세상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한다. 많은 돈과 권력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고 떳떳한 자기 세계를 가질 수 있음을...
에 의해서 christianethics.kr@gmail.com | 1월 20, 2022 | Uncategorized
<레미제라블>의 원어는 Les misérables.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빅톨 위고의 대표작이다. 빅톨 위고의 작품이 프랑스에 준 영향력은 대단했던 것 같다. 그의 작품 <노트르담의 꼽추> 때문에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재건되었다니 소설의 힘이 놀랍다.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대혁명 때에 파리 시민들에 의해 파괴되었었다. 봉건 왕정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게 방치되다가 <노트르담의 꼽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