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의해서 christianethics.kr@gmail.com | 1월 13, 2022 | Uncategorized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를 두고 몇 사람과 생각을 나누었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에 교양 선택으로 철학 강의를 들었다. 교수님은 지팡이를 짚고 교단에 서서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칸트와 헤겔을 모르면 지성인이 아니지.” 수업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송 아무개 교수님이 가르치는 과학철학 관련 수업도 들었던 것 같다. 교수님을 찾아가 물었다. “대학생으로서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해 주십시요.” 교수님은...
에 의해서 christianethics.kr@gmail.com | 1월 6, 2022 | Uncategorized
전도서는 잠언과 이어지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전도서를 기록한 자를 전도자라고 하는데, 전도자란 깨달은 자라고 이해하면 된다. 잠언은 지혜가 줄 영광을 말하고 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오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부와 명예와 생명을 얻는다(잠언 22:4).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원수와도 평화를 누린다.(잠언 16:7). 그러나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며, 지혜도 헛되고, 지혜가 가져올 영광도 헛되다고...
에 의해서 christianethics.kr@gmail.com | 1월 5, 2022 | Uncategorized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존재론을 가져와서 기독교 신앙을 설명했다. 이른바 존재신학(onto-theology)이다. 그러면서 플라톤의 존재론은 기독교적으로 변형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존재의 정도를 말했는데, 신은 최고 존재요(summa essentia) 참으로 그리고 가장 존재한다(vere atque summe est). 모든 피조물은 가장 존재하는 신에게 참여함으로써 존재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의 존재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신은 최고로 존재하면서...
에 의해서 christianethics.kr@gmail.com | 1월 1, 2022 | Uncategorized
아침 기도회를 마친 후에 김정희의 세한도 도록을 꺼냈다. 성서와 함께 세한도를 보며 한 해를 출발하고 싶다. 세한도 도록은 2021년 3월에 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 특별전에 갔다가 정 선생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유배 중에 그린 그림이다. 제자 이상적의 변치 않는 충정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그린 그림이다. 1440년 제주도에 위리안치된 추사는 2년 후 아내가 죽은 것도 모를 정도로 절해고도에서 고독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에 제자 이상적이...
에 의해서 christianethics.kr@gmail.com | 12월 24, 2021 | Uncategorized
누가복음에는 크리스마스 메씨지가 나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이들에게 평화로다.”(2:14) 하나님께 영광, 사람들에게는 평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이보다 더 잘 요약해 주는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성서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평화를 위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평화는 같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러 오셨고, 우리의 평화를 통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에 의해서 christianethics.kr@gmail.com | 12월 18, 2021 | Uncategorized
그동안 공부하면서 얼굴에 대해 강조하는 학자를 세 번 만난 적이 있다. 물론 글을 통해서 만난 거다. 처음엔 본회퍼, 두번째는 레비나스 그리고 세번째로 르네 지라르이다. 본회퍼와 레바나스는 서로 상통하고 지라르의 얼굴 얘기는 전혀 다르다. 지라르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모방욕망으로 본다. 동물을 벗어나 인간이 되면서 (homminisation) 인간은 모방욕망을 가지게 되었다. 모방욕망은 이웃이 가진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타자의 욕망을 모방해서 인간은 타자의...